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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젊은 별에게

2006.04.17 13:36

윤석훈 조회 수:192 추천:14

  다시 밤이다
  시야에 출렁이는 겨울 별자리 어디
  자전과 공전의 질서를 깨뜨릴 수 없어 고뇌하는
  젊은 별이 있다면, 지금 나에게 신호하라
  내 짙푸른 꿈 하나 쏘아 올릴 터이니

  광년의 거리 밖 너의 괴로움과
  내 바람의 외투를 걸치고 길 나서던 날들의 절망감이
  만나서 녹아 내릴 수 있다면
  내 아무런 확신 없이 떠돌던 삶이
  네 울분으로 들끓는 코로나
  백만 도가 넘는 뜨거움을
  만나서 녹아 내릴 수 있다면

  고생대, 중생대, 참 얼마나 많은 화석된 시간을 지나
  겨울 별자리와 나는 이 밤에
  이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대좌하고 있는가, 밤마다
  내 참 얼마나 많은 별에다
  기성(旣成)에 대한 증오의 화살을 쏘아 올렸던가
  어디를 가도 안주할 곳은 없었으니

  멀고 먼 시간의 바다인 황도
  12궁이 가리키는 세상을 향해 떠났었다, 그날 이후
  내 죄악의 유혹에 얼마나 자주 굴복했던가
  소리내어 울면서 버린 동정을
  얼마나 오래 저주했던가
  나보다 더 오래 질서이신 신을 저주한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싶다, 그를 힘껏 포옹하리
  
  지금은 밤이다, 끝 모를 어둠
  몸부림치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밤이지, 시작 모를 어둠이
  지상에 가득 찰 종말의 날이
  내 생애의 어느 날이 될지라도
  어둠 속에서 표류하는 젊은 별이여
  너를 축복하리, 환하게 웃으며 반기리, 환히
  환희의 날이 너와 나의 사후에 올지라도

  왜 이리 두려울까, 두렵지만 지금은 밤이니
  질서에 길들기를 거부하는 젊은 별이여
  희뿌연 새벽이 오기 전에
  내게 신호하라, 내 온몸으로 뜨겁게
  뜨겁게 너와 결합하고 싶다.

  <제8회 율목문학상 수상시집 표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