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6.11.02 03:14

한국어(동심의 세계)-이용우

조회 수 25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한국어(동심의 세계)
                                                         이용우
   
 그린이 다른 과목은 그런대로 상위권을 유지하는데 한국어만은 나름대로 애를 쓰고 공부해도 성적이 좋지 않다. 오늘 한국어 시험을 앞두고 어제 저녁부터 암기를 한다, 모의 테스트를 한다, 법석을 떨었지만 별로 신통한 구석이 보이는 것 같지 않다. 지금도 숟가락 쥔 손으로는 국에 말은 밥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눈으로는 인쇄물을 읽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그린아, 그 종이 이리 줘봐. 내가 문제를 읽을게 네가 답해봐."
시험 예상문제 서른 개 중 절반은 영문을 한글로 답하고, 다른 절반은 한국어를 영문으로 답하는 절충형 시험지로 된 것이다.
 "화분?"
 "음, 훌라워 팟."
 "굿, 다음은... 돌아가시다?"
 "엄, 엄.. 오, 패싯 어웨이."
 "맞았어, 그럼 다음은, 부끄럽다?"
 "부끄럽다? 그거 뭐야?"
 "뭐긴 뭐야, 너처럼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고 말도 못하고 그러는 거지."
 "으~응, 알았어. 엄... 엠바러스."
 "오케이, 다음은 꿀꺽꿀꺽, 소다 마실 때 나는 소리."
 "꿀꺽꿀꺽? 엄, 엄, 걸핑사운드."
 "맞았어, 얘, 그런데 꿀꺽꿀꺽이 어떻게 걸핑사운드냐? 걸핑사운드는 그냥 삼키는 소리, 라는 말 아니야?"                 
 "아잉, 나 몰라, 그냥 해."
 "알았어, 그런데 스페니쉬들은 꿀꺽꿀꺽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 뚜루꾸, 뚜루꾸 그런다. 그래도 그 정도는 되야지 걸핑사운드가 뭐냐, 걸핑사운드가. 자아, 그러면 다음은... 이번에는 영어로 한다, 디스커버?"
 "엄, 알아, 나 이거 알아. 엄, 엄... 발.. 전.. 하다? 맞았어?"
 "으흐흐, 대충 맞았어. 그런데 발전이 아니고 발견이야, 발견, 발견하다."
 "으~응, 아빠, 코리안 랭궤지 너무 어려워. 투 디피컬트야."                           

"그래, 어려워. 그렇지만 어려워도 너는 코리안 말을 배워야 돼. 왜냐하면 넌 코리안 아메리칸 이니까. 오케이? 자, 시간 없어, 다시 시작! 포인 위드아 핑거?"
 "으~음... 오케이, 알았어. 손가락... 지일?"
 "하하하, 그래그래, 손가락지일 이 아니라 그냥 손가락질, 이야. 다음은.. 콤멘드 오더?"
 "음, 멍령... 하다?"
 "멍령이 아니고 명령이야, 명령. 다음은... 더 훌 컨츄리?"
 "전국?"
 "베리굿! 맞았어요, 전국. 자, 이번엔 코리안 문제에서... 까다?"
 "뭐, 까다? 그게 뭐지?"
 "뭐긴 뭐야, 까는 게 까는 거지. 껍질 벗기는 거 말이야, 양파 껍질 벗기잖아, 그게 까는 거지 뭐야."
 "오, 그거, 필?!"
 "맞았어, 필오프. 자, 다음은..."
 "아빠, 세븐 휘브티야. 저기, 시계 봐."
 "뭐, 일곱 시 오십분? 일어나, 늦었다, 늦었어."
식탁위의 먹던 밥그릇과 반찬용기들, 숟가락과 마시던 물컵 따위를 어지럽게 늘어놓은 체, 나는 허겁지겁 그린의 손을 끌고 집을 나섰다. 어렵고 어렵다. 코리안렝귀지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어렵다. 모든 것이 다 어렵다.  



-문협월보 11월호 수필감상 작품-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3 바위의 탄식 강민경 2016.07.07 245
1122 수필 레이니어 산에 가는 길 풍광 savinakim 2016.07.06 510
1121 물속, 불기둥 하늘호수 2016.07.05 201
1120 수필 새삼 옛날 군생활얘기, 작은글의 향수 강창오 2016.07.05 316
1119 안개꽃 연정 강민경 2016.06.27 215
1118 면벽(面壁) 하늘호수 2016.06.21 206
1117 화장하는 새 강민경 2016.06.18 327
1116 6월 하늘호수 2016.06.15 129
1115 삶의 각도가 강민경 2016.06.12 290
1114 밤비 하늘호수 2016.06.10 206
1113 내 몸에 단풍 하늘호수 2016.06.06 210
1112 미루나무 잎들이 강민경 2016.06.06 315
1111 수필 빗속을 울리던 북소리-지희선 오연희 2016.06.01 295
1110 쉼터가 따로 있나요 강민경 2016.05.28 190
1109 기타 많은 사람들이 말과 글을 먹는다/ Countless people just injest words and writings 강창오 2016.05.28 559
1108 5월의 기운 하늘호수 2016.05.28 139
1107 걱정도 팔자 강민경 2016.05.22 133
1106 분노조절장애와 사이코패스 사이에서 하늘호수 2016.05.22 297
1105 평론 런던시장 (mayor) 선거와 민주주의의 아이로니 강창오 2016.05.17 333
1104 산동네 불빛들이 강민경 2016.05.17 128
Board Pagination Prev 1 ...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