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동심의 세계)
이용우
그린이 다른 과목은 그런대로 상위권을 유지하는데 한국어만은 나름대로 애를 쓰고 공부해도 성적이 좋지 않다. 오늘 한국어 시험을 앞두고 어제 저녁부터 암기를 한다, 모의 테스트를 한다, 법석을 떨었지만 별로 신통한 구석이 보이는 것 같지 않다. 지금도 숟가락 쥔 손으로는 국에 말은 밥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눈으로는 인쇄물을 읽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그린아, 그 종이 이리 줘봐. 내가 문제를 읽을게 네가 답해봐."
시험 예상문제 서른 개 중 절반은 영문을 한글로 답하고, 다른 절반은 한국어를 영문으로 답하는 절충형 시험지로 된 것이다.
"화분?"
"음, 훌라워 팟."
"굿, 다음은... 돌아가시다?"
"엄, 엄.. 오, 패싯 어웨이."
"맞았어, 그럼 다음은, 부끄럽다?"
"부끄럽다? 그거 뭐야?"
"뭐긴 뭐야, 너처럼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고 말도 못하고 그러는 거지."
"으~응, 알았어. 엄... 엠바러스."
"오케이, 다음은 꿀꺽꿀꺽, 소다 마실 때 나는 소리."
"꿀꺽꿀꺽? 엄, 엄, 걸핑사운드."
"맞았어, 얘, 그런데 꿀꺽꿀꺽이 어떻게 걸핑사운드냐? 걸핑사운드는 그냥 삼키는 소리, 라는 말 아니야?"
"아잉, 나 몰라, 그냥 해."
"알았어, 그런데 스페니쉬들은 꿀꺽꿀꺽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 뚜루꾸, 뚜루꾸 그런다. 그래도 그 정도는 되야지 걸핑사운드가 뭐냐, 걸핑사운드가. 자아, 그러면 다음은... 이번에는 영어로 한다, 디스커버?"
"엄, 알아, 나 이거 알아. 엄, 엄... 발.. 전.. 하다? 맞았어?"
"으흐흐, 대충 맞았어. 그런데 발전이 아니고 발견이야, 발견, 발견하다."
"으~응, 아빠, 코리안 랭궤지 너무 어려워. 투 디피컬트야."
"그래, 어려워. 그렇지만 어려워도 너는 코리안 말을 배워야 돼. 왜냐하면 넌 코리안 아메리칸 이니까. 오케이? 자, 시간 없어, 다시 시작! 포인 위드아 핑거?"
"으~음... 오케이, 알았어. 손가락... 지일?"
"하하하, 그래그래, 손가락지일 이 아니라 그냥 손가락질, 이야. 다음은.. 콤멘드 오더?"
"음, 멍령... 하다?"
"멍령이 아니고 명령이야, 명령. 다음은... 더 훌 컨츄리?"
"전국?"
"베리굿! 맞았어요, 전국. 자, 이번엔 코리안 문제에서... 까다?"
"뭐, 까다? 그게 뭐지?"
"뭐긴 뭐야, 까는 게 까는 거지. 껍질 벗기는 거 말이야, 양파 껍질 벗기잖아, 그게 까는 거지 뭐야."
"오, 그거, 필?!"
"맞았어, 필오프. 자, 다음은..."
"아빠, 세븐 휘브티야. 저기, 시계 봐."
"뭐, 일곱 시 오십분? 일어나, 늦었다, 늦었어."
식탁위의 먹던 밥그릇과 반찬용기들, 숟가락과 마시던 물컵 따위를 어지럽게 늘어놓은 체, 나는 허겁지겁 그린의 손을 끌고 집을 나섰다. 어렵고 어렵다. 코리안렝귀지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어렵다. 모든 것이 다 어렵다.
-문협월보 11월호 수필감상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