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0 19:26

멸치를 볶다가

조회 수 31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멸치를 볶다가 / 성백군

 

 

먹이 찾아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파도 속에 묻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절벽에 부딪혀 등뼈가 부러지기도 하면서

그 작은 것이

험한 세상을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세상살이라는 게 살면 살수록

인정사정없이 모질고 험난하여 저서

작고 힘이 없다고 봐 주지는 않는 법

어부의 촘촘한 어망에 걸려

생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헐떡거렸으면

내장엔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걸까

 

프라이팬에서

다글다글 볶기며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

말 한마디 못하고 입을 앙다문 채

입 대신 몸으로 냄새만 풍긴다

 

젓가락으로 휘젓는 나

살아있는 내가 죽은 나를 뒤치기는 것처럼

멸치를 뒤치기다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생명이 있는 동안은 힘껏 살았으니

이왕이면 좋은 맛 우려내려고 이리저리 살피며

노르스름하게 익을 마지막 때까지

정성을 다해 멸치를 볶는다.

내가 볶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1 철새 떼처럼 강민경 2016.09.19 145
1120 생각은 힘이 있다 강민경 2016.09.25 138
1119 꽃 속에 왕벌 하늘호수 2016.09.28 203
1118 近作 詩抄 2題 son,yongsang 2016.09.30 211
1117 낙원은 배부르지 않다 강민경 2016.10.01 236
1116 달, 그리고 부부 하늘호수 2016.10.02 239
» 멸치를 볶다가 하늘호수 2016.10.10 316
1114 희망을 품어야 싹을 틔운다 강민경 2016.10.11 225
1113 물에 길을 묻다 강민경 2016.10.20 215
1112 구로동 재래시장 매미들 2 하늘호수 2016.10.20 280
1111 날마다 희망 하늘호수 2016.10.27 116
1110 시끄러운 마음 소리 강민경 2016.10.28 253
1109 결실의 가을이 강민경 2016.11.01 122
1108 갈잎의 잔소리 하늘호수 2016.11.01 161
1107 수필 한국어(동심의 세계)-이용우 미주문협관리자 2016.11.02 250
1106 시조 바람의 머리카락-홍성란 미주문협관리자 2016.11.02 547
1105 수필 선물 채영선 2016.11.13 386
1104 수필 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채영선 2016.11.23 310
1103 한계령을 위한 연가/문정희 오연희 2016.11.30 242
1102 (동영상시) 어느 따뜻한 날 One Warm Day 차신재 2016.12.01 74476
Board Pagination Prev 1 ...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