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2 19:22

슬픈 인심

조회 수 18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슬픈 인심 / 성백군

잎 다 떨어진 늦가을 감나무에
홍시만 남아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나는 입맛 도는데
집 주인은 감을 먹을 줄 모르는지
작은 새떼들이 잔치를 벌입니다
팔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있는 것들
두서너 개쯤은 따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남의 집 울안에 있는 것들이라서 그냥 지나갑니다

북가주 Walnut Creek, 동네 울 밑에는
오랜지, 사과, 석류 같은 낙과들이 많습니다.
쌓아놓고 썩히느니 비닐봉지에라도 담아 울 밖에 내다 놓으면
마켓에 과일 사려 갔다가 가격표 보고 놀라 내려놓는
나 같은 행인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련만,
더러는 이미 땅바닥에서 역한 냄새를 풍기고---,
그 인심 고약하다 하였더니, 그 게 다가 아닐 거랍니다
저 집에는 우리처럼 둘만 남은 늙은 부부 힘 부쳐 따지 못할 수도 있고
우리 아이들처럼 사는데 바빠서 둘러볼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며
함부로 속단하지 말랍니다

오다가 울 밖 잔디밭에서 떨어진 석류 3개를 주었습니다
웬만한 자봉 만합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보이는 빨간 알맹이들이 영롱한 보석 같아서
몇 알 빼내 깨물었더니 우르르 쏟아져 내립니다
한 댓 박은 될 것 같습니다
잘 먹던 아들과 며느리가 울 밖에서 “주었다.” 하였더니
맛이 변했다며 밀어냅니다
그게 아닌데, 거저 주는 것은 의심나서 못 먹는 세상
돈 주고 산 것만 먹는 세상
왜, 울 밑에 혹은 나무에 그대로 내버려두었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소통이 안 되는 세상, 돈이 제일인 세상
세상은 부유해지는데 부유해지는 만큼 격차는 벌어지고
행복한 사람은 점점 줄어듭니다

석류 한 댓 박을 그의 다 혼자서 먹었는데,
괜찮겠지요? 슬픈 인심도 인심이니까요
괜찮아야 희망이 있습니다.

      645 - 12152014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41 낙화.2 정용진 2015.03.05 200
940 분수대에서 성백군 2015.02.25 140
939 비빔밥 2 성백군 2015.02.25 218
938 언덕 위에 두 나무 강민경 2015.01.25 274
» 슬픈 인심 성백군 2015.01.22 184
936 수필 김우영의 "세상 이야기" (1)생즉사 사즉생( 生卽死 死卽生) 김우영 2015.01.12 426
935 담쟁이에 길을 묻다 성백군 2014.12.30 274
934 12월의 결단 강민경 2014.12.16 283
933 별 하나 받았다고 강민경 2014.12.07 331
932 일상은 아름다워 성백군 2014.12.01 123
931 촛불 강민경 2014.12.01 173
930 수필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이유 김우영 2014.11.23 308
929 엉뚱한 가족 강민경 2014.11.16 198
928 어둠 속 날선 빛 성백군 2014.11.14 178
927 얼룩의 소리 강민경 2014.11.10 291
926 수필 김우영 작가의 (문화산책]물길 막는 낙엽은 되지 말아야 김우영 2014.11.09 576
925 10월의 제단(祭檀) 성백군 2014.11.07 176
924 숙면(熟眠) 강민경 2014.11.04 168
923 가을비 성백군 2014.10.24 173
922 군밤에서 싹이 났다고 강민경 2014.10.17 305
Board Pagination Prev 1 ...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