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0 19:26

멸치를 볶다가

조회 수 34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멸치를 볶다가 / 성백군

 

 

먹이 찾아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파도 속에 묻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절벽에 부딪혀 등뼈가 부러지기도 하면서

그 작은 것이

험한 세상을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세상살이라는 게 살면 살수록

인정사정없이 모질고 험난하여 저서

작고 힘이 없다고 봐 주지는 않는 법

어부의 촘촘한 어망에 걸려

생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헐떡거렸으면

내장엔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걸까

 

프라이팬에서

다글다글 볶기며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

말 한마디 못하고 입을 앙다문 채

입 대신 몸으로 냄새만 풍긴다

 

젓가락으로 휘젓는 나

살아있는 내가 죽은 나를 뒤치기는 것처럼

멸치를 뒤치기다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생명이 있는 동안은 힘껏 살았으니

이왕이면 좋은 맛 우려내려고 이리저리 살피며

노르스름하게 익을 마지막 때까지

정성을 다해 멸치를 볶는다.

내가 볶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61 두 손을 마주하여 그리움을 만든다 백야/최광호 2005.09.15 307
2160 그렇게 그때 교태를 서 량 2005.09.19 276
2159 아이들과갈비 강민경 2005.09.19 336
2158 노숙자 성백군 2005.09.19 188
2157 코스모스 길가에서 천일칠 2005.09.26 200
2156 식당차 강민경 2005.09.29 312
2155 가을단상(斷想) 성백군 2005.10.05 256
2154 코스모스 날리기 천일칠 2005.10.10 337
2153 아버지 유성룡 2006.03.12 465
2152 달팽이 여섯마리 김사빈 2005.10.12 276
2151 한 사람을 위한 고백 천일칠 2005.10.13 278
2150 무서운 빗방울들이 서 량 2005.10.16 191
2149 일상이 무료 하면 김사빈 2005.10.18 364
2148 펩씨와 도토리 김사빈 2005.10.18 307
2147 쌍무지개 강민경 2005.10.18 208
2146 추일서정(秋日抒情) 성백군 2005.10.23 430
2145 가을묵상 성백군 2005.11.06 199
2144 뉴욕의 하늘에 / 임영준 뉴요커 2005.11.11 246
2143 지역 문예지에 실린 좋은 시를 찾아서 이승하 2005.11.11 681
2142 도마뱀 강민경 2005.11.12 25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