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0 19:26

멸치를 볶다가

조회 수 32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멸치를 볶다가 / 성백군

 

 

먹이 찾아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파도 속에 묻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절벽에 부딪혀 등뼈가 부러지기도 하면서

그 작은 것이

험한 세상을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세상살이라는 게 살면 살수록

인정사정없이 모질고 험난하여 저서

작고 힘이 없다고 봐 주지는 않는 법

어부의 촘촘한 어망에 걸려

생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헐떡거렸으면

내장엔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걸까

 

프라이팬에서

다글다글 볶기며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

말 한마디 못하고 입을 앙다문 채

입 대신 몸으로 냄새만 풍긴다

 

젓가락으로 휘젓는 나

살아있는 내가 죽은 나를 뒤치기는 것처럼

멸치를 뒤치기다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생명이 있는 동안은 힘껏 살았으니

이왕이면 좋은 맛 우려내려고 이리저리 살피며

노르스름하게 익을 마지막 때까지

정성을 다해 멸치를 볶는다.

내가 볶인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37 당신은 시를 쓰십시오-김영문 file 오연희 2016.02.05 350
936 문자 보내기 강민경 2014.02.03 348
935 바람의 필법/강민경 강민경 2015.03.15 348
934 자유시와 정형시 하늘호수 2015.12.23 346
933 한낮의 정사 성백군 2014.08.24 345
932 물구멍 강민경 2018.06.17 342
931 겨울나무의 추도예배 성백군 2014.01.03 337
930 목백일홍-김종길 미주문협관리자 2016.07.31 337
929 단풍 낙엽 / 성백군 2 하늘호수 2019.07.16 337
928 무명 꽃/성백군 하늘호수 2015.03.27 333
927 별 하나 받았다고 강민경 2014.12.07 332
926 (동영상시) 나비의 노래 A Butterfly's Song 차신재 2015.09.27 330
925 할리우드 영화 촬영소 강민경 2015.05.13 329
924 나무 요양원 강민경 2014.01.23 328
923 반쪽 사과 강민경 2014.04.27 328
922 무 덤 / 헤속목 헤속목 2021.05.03 328
921 수족관의 돌고래 강민경 2015.07.15 327
920 길 위에서, 사색 / 성백군 하늘호수 2015.06.13 326
919 바람을 붙들 줄 알아야 강민경 2013.10.17 325
» 멸치를 볶다가 하늘호수 2016.10.10 32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9 Next
/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