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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백자

2006.09.26 18:12

박영호 조회 수:586 추천:31

   잃어버린 백자

   해지는 맑은 강물 앞에 서면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민 올 때 잃어버린 백자 한 점 생각난다.  
   푸른 물 떨어뜨린 백색 허리에
   둥근 연잎 돌아가는 달덩이가
   백년 묵은 골동품보다 더 고왔다

   깊은 밤 그는 내 색시가 되어
   투명한 알몸으로
   내 외로움의 시중도 들어주고
   겨울에는
   살어름 낀 강변에서 꺾어온 버들개지를
   푸릇푸릇 싹도 틔우더니
   끝내 결혼한 내 침실까지 따라와
   밤마다 내가 아내와 벌이는 정사를
   저도 제 몸뚱이로 비춰내면서
   항아리 우는 소리를 내곤 했다

   그러던 것이
   이민 와서 짐을 풀어보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밤마다 애통하여 꿈속을 헤매고
   떠오르는 만월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곳일까
   그녀가 내 바람을 품고 있는 곳
   성북동 어느 구 한옥 부부 침실인지
   아니면 어느 먼지 낀 선반 위에서
   이 빴고 땟물 낀 고물로
   공허한 하늬바람 소리나 내고 있지 않는지

   그러나 이미 산산 조각이 나버린 세월
   다만 깨어진 한 조각의 사금파리로 남아
   밤이면 어둠 속에서
   별빛처럼 새파랗게 반짝이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