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 임혜신
2010.03.01 11:15
그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나를 키웠지요 어느 무덥던 여름 그는 나의 손목을 잡고 덤불숲 그늘로 가 낯선 나무의 이름 하나를 쥐어주었지요 그 나무의 이름은 참으로 순하게 무슨 풀벌레의 이름처럼 싱그럽게 나의 입술을 흔들었습니다.
내가 사는 거리엔 늘 바람이 불었지요 바람에 실려 총소리가 날아들고 싸이렌 소리가 흘러들 때 나는 그가 가르쳐준 나무의 이름에 엎드려 주룩주룩 장맛비 쏟아지는 꿈속을 헤매곤 했습니다 습습한 대지의 치맛자락에 매어 달린 나는 2-3 온즈의 태아, 어머니의 발등을 짓누르는 생명의 앙증스런 무게였지요
거리는 침울했지만 나는 기다렸어요 벗어나고 싶은 만큼 침착하게 그가 내게 쥐어준 나무의 이름처럼 둥근 알의 내부에서
내부라는 것은 좁아 터져서 인파가 들끓는 지하상가처럼 시끄럽거나 싸우는 날이 빈번한 다세대 주택처럼 답답했지요 몇 발작 걷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온갖 냄새들로 종종 붐비더군요 어머니의 내부도 다를 바 없었지만 나는 기다렸지요 나무의 푸른 이름을 타고 소년처럼 뛰어 다닐 드넓은 평원을
기다리는 자에게 완벽한 배반은 없습니다 숲에서 방금 나온 햇살의 신선함으로 그가 다시 한 번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나의 손목을 잡아 끌 때 나는 드디어 밖으로 나왔으니까요 거기 가을이 오고 있더군요 속속들이 스미는 한기의 힘이 얼마나 빠르고 강하던 지 나는 순식간에 내 살던 곳을 뛰쳐나와 드높은 장작더미에 앉아 있었습니다만
그가 나의 귓속에 불어 넣어준 나무의 이름이 이처럼 써늘하다니요 툭 툭 잘려 누운 밝음의 뼈마디에 흐르는 죽음의 향기 건조한 내 어머니의 무릎에서 나는 또르르 또르르 귀뚜라미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빅뱅처럼 온 세상에 깨어져 눕는 햇살의 유리 밭에서 그 때 나는 깨달았지요 이렇게 외롭고 슬픈 것이 환생인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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