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개 - 구자애

2006.01.08 01:58

미문이 조회 수:459 추천:60

점심을 대신하여 해물전을 부친다
동해 어느 한 쪽 바다에서 올라온 살이 통통 오른 오징어와
익산 어느 산골에서 밤새 올라온 듯한 갖은 야채와
안면도에서 올라온 물 좋고 싱싱한 굴과
시흥수암에서 올라온 명징한 시인의 목소리와
거제도에서 올라온 동백꽃 향기 한줌과
소양강에서 올라온 맑은 물과
하얗게 바스러진 민심의 심지들로
차질 때까지 반죽을 한다
그들도 처음엔 뺏댄다
그래도 그 지역에서는 잘 나가는 최상품인데
양푼에 들어가 색깔도 없이
똑같은 처지가 된다는 것이
영 마뜩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우둔하고 고집은 세지만
때론 지혜로워 금새 타협할 줄 안다
서로 다른 환경을 무시한 채 숨죽인 그들은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 끈끈히 뭉친다
서로 말하지 않고도 서로 나서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다 구워진 그들은,
서둘러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한다
상(傷)한 것들만 먹고사는 흐느적거리고
비린내 나는 구석구석을 찾아
그들의 주식이 되어 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