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대한 보고서 -박찬일

2011.03.03 11:19

한길수 조회 수:340 추천:31



나를 여태까지 키운 것은 불안이었다 아침으로 먹고 점심으로 먹고 저녁으로 먹는다 내 몸에는 항상 불안이 소화되는 중이다 어쩌다 불안을 굶으면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난다 불안이 제일 먹고 싶다 파를 송송 썰어 넣고 양파를 벗겨 넣고 나중엔 달걀을 풀어 휘휘 젓는다 불안 냄새로 온 실내가 진동하고 불안이 마침내 익으면 불안을 꺼내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다 꼭꼭 씹어 먹는다 불안을 떨어뜨리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다 세 끼 불안 먹자고 하는 짓이다 불안을 사러 다닌다 아침 점심 저녁 먹을 불안을 사러 다닌다 목욕탕에 간다 극장에 간다 시장에 간다 결혼식장에 간다 세미나장에 간다 전람회장에 간다 병원에 간다 학교에 간다 시 낭송회에 간다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한아름 불안을 사 가지고 와 냉장고에 쟁여 넣는다 몸에는 항상 불안이 소화되는 중이다 식도를 지나 위를 지나 십이지장을 지나 작은창자 큰창자 항문으로 가는 길이 있다 차근차근 불안은 분해된다 불안이 나를 살찌게 한다 1956년 춘천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연세대학교 독문학과, 동대학원(문학박사) 및 독일 카셀대학에서 수학 현재 연세대학교 출강중 편운문학상 및 박인환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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