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에게 밥을 먹인다 -나태주

2011.05.02 10:29

한길수 조회 수:446 추천:21




한밤중에 깨어 괘종시계의 태엽을 감는다
이런, 이런, 태엽이 많이 풀렸군
중얼거리며 양쪽 태엽을 골고루 감는다
어려서 외할머니는 괘종시계 태엽을 감는 것을
시계에게 밥을 준다 그랬다
이 시계는 아내보다도 먼저 나한테 온 시계다
결혼하기 전 시골 학교에 시계장수가 왔을 때 월부로 사서
고향집 벽에 걸었던 시계다
우리 집에도 괘종시계가 다 생겼구나!
아버지 어머니 보시고 좋아하셨다
오랜 날, 한 시간마다 한 번씩 하루에 스물네 번씩
그 둥글고도 구슬픈 소리를 집안 가득 풀어놓곤 했었다
어려서 외할머니는 시계가 울릴 때마다 시계가
종을 친다고 말씀하곤 했었다
시계 속에 종이 하나 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결코 의심할 줄 몰랐다
그러나 이 시계 고향집 벽에서 내려지고 오랫동안
헛방에 쑤셔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몇 해 전 우리 집으로 옮겨 온 뒤
다시 나하고 함께 살게 되었다
친구야, 밥이나 많이 먹어 밥이나 많이 먹어
나는 새벽에 잠깨어 중얼거리며 시계에게 밥을 먹인다




1945 충남 서천 출생  
1963 공주사범학교 졸업
1985년 한국방송통신대학 졸업
1988년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등단  
흙의 문학상, 충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시집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 <대숲 아래서>, <누님의 가을>  
<모음(母音)>, <막동리 소묘>, <대숲에 어리는 별빛>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구름이여 꿈꾸는 구름이여>
<변방>, <외할머니>,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굴뚝 각시>, <우리 젊은 날의 사랑>, <목숨 비늘 하나>
<아버지를 찾습니다>, <빈손의 노래>,<추억이 손짓하거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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