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파랑 -나희덕

2011.02.13 06:33

한길수 조회 수:458 추천:26



한 개의 청바지는 열두 조각으로 만들어지지 또는 열다섯 조각 열일곱 조각 안팎이 다르게 직조된 청(靑)처럼 세계는 흑백의 명암을 선명하게 지니고 있어 질기고 질긴 그 세계는 일부러 찢어지거나 해지게 만드는 공정이 필요해 한 개의 청바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에 푸른 물이 들어야 하는지,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만든 청바지 속에 들어가보지 못했지 그들의 자리는 열두 조각 중 하나, 또는 열다섯 조각 중 하나, 열일곱 조각 중 하나, 명랑한 파랑을 위해 질기고 질긴 삶을 박고 있을 뿐 미싱 위에서 부표처럼 흔들리며 떠다니고 있을 뿐 푸른 혓바닥처럼 쌓여 있는 피륙들, 조각과 조각이 등을 대고 만나는 봉제선들, 주머니마다 발굽처럼 박히는 스티치들, 우연처럼 나 있는 흠집이나 구멍들, 공장 곳곳에서 돌아가는 검은 선풍기들, 검은 눈들, 방독면을 쓰고 염색약을 뿌리는 사람들, 적당한 탈색을 위한 작은 돌멩이들, 세탁기에서 나와 쭈글쭈글 말라가는 청바지들 다리미실을 지나 한점 주름 없어지는 세계 마침내 라벨을 달고 포장을 마친 명랑한 파랑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 『야생 사과』 시론집『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반통의 물』 등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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