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우주적으로 쓸쓸하다 -최금진

2011.05.13 10:58

한길수 조회 수:492 추천:16



퇴근하면서 하늘을 본다 뭇 별들을 암흑에 매달아 놓은 하느님의 거대 비행선이 나한테, 이리 올라 오너라, 하신다면 이 착한 짐승은 돈밖에, 집밖에, 먹고 사는 것밖에 모르는 이 착한 짐승은 네, 알겠어요, 하고 하늘로 확 올라갈 것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한 날들 나는 어쩌다 태어나고 떠돌다가 여기에 뿌리를 박았나 꿈에 유에프오들만 잔뜩 몰려와서 우리 집 묵정밭을 휘 둘러보고 가는데 뿌려놓은 씨앗을 거두러 올 것처럼 말세만 거리의 전단지에 내려왔다 가는데 퇴근하면 다시 출근이 기다리는 집에 나는 왜 돌아가나 나는 왜 화날 일도 아닌데 화가 나나 바람이 암호처럼 창문을 두드리고 천사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나를 찾기라도 한다면 이놈, 아직도 거기서 뭐하는 게냐, 이렇게 찾기라도 해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퇴근하면서 술도 한잔 걸쳤으니 하늘을 보면 우리 어머니가 깨트린 왠 접시들이 저리도 풍년인가 와라, 와서 다 싣고 가라 우리 집 마당도, 발바리도, 빨랫줄도, 요강도 다 줄 테니 우주의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쓰고 앉아 달 뒤편에 있다는 불켜진 외계인 기지나 바라볼까 너네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 너네들도 죄책감이 있나, 멀리서 커브를 그리며 몰려오는 유에프오들과 어울려 딱 한잔만 더 하고 갈까 블랙홀 속에, 동그란 상자 안에, 또 그 상자의 상자 안에 새빨간 장미성운과 말대가리 성운이 구슬처럼 달그락거리는 어둠의 주머니 안에, 네모난 목구멍 안에, 부처님 손바닥 안에 흔들리는 가로등 아래 나는 비틀거리며 오줌을 눈다 * 2008년『현대시』작품상 추천작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1994년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8년 제4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2001년 <창작과비평>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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