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보다 예감을 믿는 저녁이 있다 -박용하
2011.07.23 03:32
새들이 날아가다 철탑 위에 멈춰 서면 그리웁지 않은 것도 그리워진다. 그리움보다 멀리 빨리 닥쳐오는 것은 예감밖에 없다. 저녁은 둥글고 노란 감나무 빛깔의 안녕을 전해준다 전화보다 예감을 믿는 저녁이다 그래 예감보다 폭력을 믿는 저녁이다 폭력보다 돈을 믿는 저녁이다. 하지만 비는 나무에서 먼저 오고 하늘은 구석기의 얼굴을 장쾌하게 보여준다 비는 그 먼 거리에서 와 자신을 박살내면서 육체를 완성한다 그래 주룩주룩 물방울 많기도 투명하기도 외롭다 인간들보다 하얀 자작나무를 믿는 저녁이다 사회보다 자연을 믿는 저녁이다 국가보다 오래전부터 밀려오는 파도를 믿는 저녁이다 집들 사이의 나무들보다 나무들 사이의 집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감은 그 어떠한 매스 커뮤니케이션보다 화려하다 나는 이 예감으로 20세기의 불행을 추억보다 빨리 완성하리라 전화보다 예감을 믿는 저녁이다 아니야 예감보다 주먹을 믿는 저녁이다 주먹보다 쓸쓸하게 나를 나뭇잎 지는 저녁을 믿는 아침이다 1963년 강원 강릉 출생 1989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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