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 신문이 턱하니 식탁에 뱉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렸다 나는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다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 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대단스러울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 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알아서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슬러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못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1955년 서울 출생 1990년 《작가세계》등단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세워진 사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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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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