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수 만드는 집 -유미애
2011.11.13 04:02
옛집 감샤르*가 신기루처럼 떠 있던 시절 나는 새의 저녁을 훔친 죄로 형틀에 묶여 있었던 것 고하노니 나는 저녁에 우는 새와 비린 복숭아 뼈를 가진 장미나무일 뿐 이 성의 오래된 발작과 고열을 지켜온 건 병사들 몰래 피어난 처녀들과 순수한 혈통 덕분 장미의 이름으로 할미는 꽃의 목을 잘라 솥에 던지고 어미는 초록의 문자들로 불을 피워 즙액을 짰던 것 고하노니 한 잔의 피를 홀짝이며 나는 장미의 경전을 넘겼던 것 처녀들의 이름을 거두며 노래를 불렀던 것 위대한 꽃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온 몸의 레이스를 깁는 동안 한 생이 흘러갔던 것 고하노니 마루메죤**의 가마솥은 저녁 새와 할미마저 삼켰던 것 나는 사막의 붉은 시간에게 몸을 맡겼던 것 천천히 오아시스의 아침과 복숭아 향 체취를 잊어갔던 것 장미의 칼날이 쇄골 뼈에 박혀 와도 내겐 더 이상 신성한 사냥감과 흘릴 피가 모자라 레이스를 벗기면 마지막 책장을 열고, 끼룩끼룩 뱀 한 마리 울었던 것 고하노니 나는 어느새 유혈목이보다 슬프고 유려한 꽃의 문장을 읊고 있었던 것 * 장미수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란의 마을. ** 나폴레옹 왕비 조세핀이 머무르던 궁. 조세핀은 장미 수집광이었다고 함. 1961년 경북 출생 2004년 《시인세계》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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