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강윤미

2011.10.03 03:22

한길수 조회 수:437 추천:34



이 방의 우물은 깊다 우물에 스며드는 빛은 아옹다옹 다섯 평의 그늘을 차지하고 있다 내 등 뒤에 숨어 귀가하는 이끼들 젖은 등골을 다독거리는 내 시선은 베갯잇에 낯선 감촉으로 맴돈다 열쇠처럼 누워 눈을 감으면 잠의 문이 열리고 불이 켜지는 우물의 방, 두레박은 바닥을 퍼 나르기 시작한다 꽃잎 꽃잎 물방울 꽃들이 귓속까지 차오른다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머리카락 보일라 내 유년은 허둥지둥 두레박에 떠올랐다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한다 장판지무늬 속 애벌레들이 나비가 되어 출렁거리는 밤 나는 세상의 첫 풍경을 마주한 우물 안 개구리처럼 깊게 잠든 나를 글썽이는 눈으로 바라본다 호접몽, 정신없이 정신을 차려보면 두레박의 흔적은 없다 방안에 물을 붓는다 물은 보이지 않는 구멍을 찾아 흘러들고 인기척은 목마른 소리를 내며 옆집에 세든 우물 속으로 서둘러 사라진다 한 방울 두 방울 하이힐 소리를 떨어트리며 나를 엎지른 잠 속으로 들어서는 여자 서로의 눈물을 오래 듣고 있다 계간 『시에』 2010년 여름호 발표 1980년 제주 출생 원광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200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7년 광주일보 문학상 수상. 201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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