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2003.12.02 05:30

길버트 한 조회 수:1344 추천:94

엘에이 다운타운에서 산타모니카 해변을 가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10번 프리웨이를 이용한다. 그 거리의 아침과 저녁은 교통지옥을 이루고 있다. 특히 엘에이 국제공항 가는 길인 405번 프리웨이 연결도로가 있어 혼잡은 이루 말할 것도 없기 때문에 교통지옥이라는 별명이 수식어처럼 붙어 다닌다. 역으로 다운타운으로 출근 할 때는 높은 솟은 빌딩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다운타운 M회사에 다니는 김 과장은 베니스 빅토리아 아파트에 살면서 92년 올즈모빌 커틀라스를 타고 10번 프리웨이를 통해 출근을 한다. 혼잡을 피해 일부러 일찍 출근해서 샌드위치 삽에서 커피에 아침을 먹거나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오늘도 그는 다른 날이나 별반 다름없이 일찍 나서서 출근을 하던 중이었다. 지난 저녁에 새로 나온 비디오를 두 개나 빌려 본다고 세시 반까지 본 것 때문이었는지 하품이 연신 나왔다. 그는 사우스 번을 지나갈 무렵 자동차 프런트에서 하얀 연기가 났다. 당황하여 차선을 급하게 변경하려다 옆 차선에서 달리던 차와 접촉 사고를 날 뻔했다. 갓길에 세워 놓고 후드를 열었다. 그는 왜 고장이 났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문득 한달 전에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간 것을 떠올렸다. 빌어먹을 그 놈이 일부러 고장내게 한 것일지 모른다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엔진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핸드폰을 들고는 어디로 전화를 해야할지 망설이고 있다. 정비공장의 정비하는 젊은 친구가 몇 마디 조언을 하면서 자동차를 고치라고 할 때 고쳤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후회를 했다. 회사에다 전화를 하니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는지 신호만 가고 받지를 않는다. 그럼 트리플 에이 자동차 회원이니 그 쪽에다 전화를 해야 하겠지만 복잡하면 차라리 그 정비하는 젊은 친구가 있는 정비소의 견인을 부를까 망설이다 정비공장 전화번호는 어디에도 적어두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트리플 정비회사에 카드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영하의 기온은 아니라도 이른 아침이라 쌀쌀하기만 했다. 차들은 씽씽 거리며 지나가고, 누가 사고가 났는지, 어떤 일이 있는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고 제 갈 길만 급하게 가는 것 같아 야속하기도 했다. 하기는 자신도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흔하게 지나칠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삭막한 사회가 정말 싫다고 도리질을 쳤지만 세월은 이 사회에 아주 적당하게 적응을 시켜주고 있어서 자신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회사에서 업무를 볼 때도 자신은 총무과장이라는 직책이기에 다른 거래처에서 사람들이 한번 만나 달라고 해도 그런 것은 자재과나 납품과에 알아보라고 퉁명하게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자동차 정비하는 젊은 친구가 눈도 제대로 보지 않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저기요, 손을 볼 때가 몇 군데 있어서요. 비용이 좀 나오겠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해야할 일들 같아요."
"아니 얼마 전에 메이저 튠업을 했는데 뭘 또 고치라는 거요?"
"기록을 보니까 튠업 한지 8개월은 족히 된 것 같고, 엔진오일만 한번 간 것 같은데요."
"자동차가 엔진오일만 제때 갈아주면 가는 거 아닌가? 차는 오래되었어도 마일리지는 작으니 그냥 엔진오일만 갈면 안되나?"
"타이밍 벨트도 갈아야겠지만 그보다 레지에이터도 손을 좀 봐야겠어요. 잘못하면 차가 갑자기 길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황해서 다른 접촉사고도 날 수 있어요."
"사고가 나고 안 나고는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자네는 손님이 원하는 데로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시간도 없는데 그냥 엔진오일만 갈지."
김 과장은 속으로 저런 괘씸한 놈이 다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외모는 꿔다 논 보리궤짝처럼 생겨 가지고 지저분한 오일을 뒤집어 쓴 주제에 어른이 이야기하면 들을 것이지 끝까지 이겨보겠다고 우시는 것이 더욱 화를 내게 했다. 김 과장은 상기한 얼굴로 담배를 꺼내 연거푸 몇 모금을 빨더니 겨우 진정이 되는지 휴게실에 들어가 잡지를 뒤적였었다.

어떻게 된 회사가 주말이 따로 없었고 퇴근 시간이 따로 없이 업무를 집에까지 가지고 와서 봐야했다. 아이들에게 디즈니랜드에 놀러 가겠다는 약속도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른다. 김 과장은 매사를 뒤로 미뤄 놓는 습관도 한몫을 하다보니 쫓기다시피 살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스스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잠깐의 여유를 놓칠세라 디즈니랜드에 가자고 졸라 모처럼 회사의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가족과 함께 디즈니랜드를 찾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건 인파에 밀려 휴식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얄궂은 인형극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삼 십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기에 그는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어드벤처 테마 파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의 부인과 아이들은 좋아서 신이 났다. 마냥 즐겁다는 표정이었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려고 줄을 섰을 때였다.
"아니, 김 과장님 아니세요? A자동차정비소에서 일하는 김근태입니다."
"네, 알지요.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반갑군요. 좀 쉬려고 하니깐 애들이 어찌나 성화인지 따라 나왔습니다."
"잘 하셨어요, 쉬면서 일을 하셔야 건강에도 좋습니다. 참, 자동차는 문제없죠?"
"네, 자동차가 굴러만 가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곳에 일하는 젊은 친구는 상당히 당돌합디다.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아서 혼났습니다. 그 친구, 원래 그래요?"
"아, 그 친구요. 인물이 없어서 그렇지 전자공학을 전공해서 졸업과 함께 직장도 보장되었던 친구인데 아버지가 자동차 결함으로 사고를 난 다음부터는 좋은 직장도 마다하고 자동차만 고치려고 드는 괴물 같은 친구죠. 하지만 차량 손보는 실력은 정말 대단한 친구입니다. 김 과장님 차를 보더니 자꾸만 고개를 저으며 고쳐야 한다고 하던데요."
"아직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그냥 끌고 다니는 거죠. 우리 같이 자리해서 식사나 할까요?"
사람들은 조금 아는 것을 마치 전부를 아는 것처럼 굴려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며 빈소리로 합석을 했으나 다행히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고 인심을 쓰듯 해서 주문한 음식을 들고 애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에게는 옆에서 어떤 조언을 해준다 해도 눈으로 확인이 안된 이상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편이었다. 수학 같은 공식으로 똑 떨어지는 답만이 전부로 알고 있기에 자동차의 관리쯤이야 고장나면 고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견인 트럭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이 십분도 안되었지만 프리웨이에서 자동차가 손살같이 지나는 것에 비하면 그는 너무 많이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출발을 했다는 데도 재촉전화를 하고 있었다. 자동차를 견인해서 고치기까지는 얼마를 더 시간이 흘러야할지 답답함이 아침 이슬이 내리듯 지나는 자동차에서 나는 찬기가 그를 차곡차곡 덮고 있었다. 오늘까지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인사과에 넘겨 줄 자료하고 부장에게 보고 할 월말 장부에 특별사업 기획 안까지 그는 머리가 지근거렸다. 사내에서 만년과장이라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리는 듯했다. 한달 전에 자동차를 손 볼 때 아주 손을 봐서 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생각하면서 밥맛 떨어지는 그 젊은 친구를 연상했다.
소비자 연맹과 정부의 담당 부서에서 자동차 정비공장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실제보다 부풀리게 하거나 오히려 자동차를 더 망가지게 한 다음 견적을 받아 올리는 것부터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고치라는 것까지 다양하고도 포괄적인 조사가 있었다. 수많은 곳이 적발되고 징계를 먹었으며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자동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그는 그런 보도가 많은 정비소가 다 그렇게 엉터리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A자동차정비소는 양심업소로 선정이 되었다. 몇 년 전에도 조사가 있었을 때 믿을만한 정비소라고 방송에서 떠들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그 젊은 친구가 있어서 일거라는 생각은 이미 해 놓고도 일부러 김근태 사장의 수완이 좋아서 그럴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김 과장은 그런 소문으로 전에 다니던 정비소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지 수 삼 년이 되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을 때 견인차가 번쩍이는 불을 켜고 달려왔고 견인차의 꽁무니에 그의 차가 매달려 프리웨이를 벗어나고 있다. 어느 정비소로 옮기겠냐는 운전자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올림픽 길에 있는 A자동차 정비소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젊은 친구를 다시 보는 것은 싫지만 왠지 믿음이 가기는 했다. 자동차만 잘 고치면 되었지 그 친구와 사귈 것도 아니고 필요에 의해서 고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그 친구에 대해서는 애써 의미를 깎아 내렸다.
"자동차를 갈아야겠어. 너무 오래 탔나봐. 요즘 새차 나온 것 중에 어떤 것이 젤 나아?"
"글쎄요. 이 차가 마일리지가 적기 때문에 고쳐서 타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유지비야 새 차의 월부금의 반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지요. 손보면 앞으로도 삼 년은 거뜬하겠는데요, 뭐."
"그렇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자네가 고치라고 할 때 고쳤으면 오늘 같은 이런 고생 안 할텐데 그 때는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보이지 않으니까 괜한 돈을 쓴다고 생각했었던 것이지."
"선생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요. 미국에서는 차를 발처럼 쓰고 살아야 하니 차는 꼭 사전에 정비를 하고 다니셔야해요. 이만만 한 것이 다행이에요. 잘 고쳐 놓을 테니 염려 마세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우물에 침을 뱉어도 다시 찾는다고 그는 이 젊은 친구에게 겸연쩍은 마음뿐이었다. 그 젊은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곱씹어 봐도 옳은 소리요, 영양가 있는 소리였다. 출근시간은 늦어 있었고, 회사에다 전화를 하니까 부장은 벌써 와서 기안 올리라고 했다. 자동차야 저 젊은 친구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는데 그는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산적한 일들이 까마득했다. 정비소 김근태 사장에게 회사까지 차를 태워 달라고 부탁을 해서 회사에 도착했다. 한시간 가량 출근이 늦었지만 오늘 일은 해야 할 일들을 이미 반은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로 인해 곤경을 겪기는 했지만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깨닫게 해준 그 친구가 참 고마웠기 때문이다. 여직원이 커피를 타와 들라고 하자 그는 일어서서 받으며 "좋은 아침이야." 하며 미소를 보여줬다. 여직원은 놀라면서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 답례를 하고 자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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