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적 탐구와 시적 변형의 알레고리

2008.01.30 03:57

한길수 조회 수:1139 추천:90

존재적 탐구와 시적 변형의 알레고리
                
                                                 - 최락완의 시세계

                                

1.

  최락완 시인을 처음 만났던 것은 문협 토방에서였다. 사우스베일로 한의과 대학 임상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의사로 오십 초반의 나이인데도 훨씬 젊게 보이는 동안의 얼굴로 목소리는 조용했으며 순박한 영혼을 가진 인상과 온화한 인품을 가진 외유내강 형으로 보였다. 평소 행동이 크거나 도에 넘치지 않아 시인의 내면세계를 조금씩 엿보게 되었는데 끊임없이 자신과 정면으로 대응하여 갈등으로 번뇌하는 수행하는 수도자의 한 사람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의 정착을 위해 해왔을 궂은일들, 나열하기 힘든 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과 싸우며 살아가는데 그 역시 다를 바 없었다. 1955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자란 시인은 학창시절을 주경야독으로 독학했다. 미국에서도 생활의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한의대학을 다녔다. 그에게 투지는 끝이 없어 보이지만 단단한 실력과 성실함으로 한의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곧바로 학교에서 교수로 임용되면서 불안했던 신분문제까지 해결되었다. 낮에는 대학에서 넘쳐나는 환자들을 돌보며 인술을 베풀었고 밤에는 문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창작과 비평》신인상 본심까지 갔던 전력으로 시에 대한 팽팽한 완력을 갈고 닦았다. 그 긴장감은 놓치지 않고 2002년 《심상》신인상에 당선하여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 미주에 거주하는 젊은 시인들로 구성한 모임에 동인으로 매월 시에 대한 담론과 창작에 대해 토론도 하면서 창작 의욕을 고취해 왔다. 한의학 박사를 취득하면서 인술에 정도를 걸으며 불치에 시름하거나 고통 받는 사람들 곁에서 부단한 노력으로 완치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육체의 병고를 낫게 해 주는 것이 인술이라면 문학은 정신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마음으로 확인하는 소통의 길에 서서 소망의 빛이 되고자 했다.

정작 시인은 내 놓을만한 시집도 없고,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다. 따라서 그를 제대로 평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객관적 자료의 부재이다. 시를 평가할 때는 은유적 수사랄지, 내포된 뜻과 함축된 의미를 찾는 일이겠지만 시인을 평가할 때는 시인의 사상과 작법 등, 시와 연관된 내적 사상을 총망라해야 비로소 온전한 평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인에게도 장인 정신처럼 스스로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백여 편이 넘는 작품도 시의 내제된 정신에 와 닿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린다. 남다른 정신세계로 시를 창작하는 시인으로 시인이 꿈꾸는 세계는 손으로 물새는 댐 구멍을 막았던 네덜란드 한스 브랑카처럼 자신을 승화시켜 인류 구원의 길에 디딤돌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위대하다는 것은 언제나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2.

시인은 한국의 유수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거나 미주의 대표 문예지인 《미주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는 등의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에 나타난 내면의 세계와 시적 정신을 살펴본다.

지겨운) 길을 쳐다보다 라며 전혀 길은 쳐다보지 않네
느닷없이 길을 걸어보네 길 아닌 길은 어디에도 없으니
근신하라고 길은 스스로 존재한다고 잊으라고 없어지라고
하지 말라고 팔만사천의 길이 없어져야 하는가 라고
이를테면 (혹여 끊임없이 생기기도 하라고 
                                              -「길을, 길에 버리다」 전문

조정권 시인이 2007년 《미주문학》봄 호에서 삶이란 늘 노상에서 길을 묻는 것과 같으며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에서 끝나는지 어디로 이어지는지, 삶도 그러하듯이 길도 한 종착지점을 향해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했다. 시간 흐름에 자기 존재를 투사하고 번뇌하는 고단한 여행자의 모습이 시의 표면에 나타나 있으며 팔만사천의 길이란 세속세계에 있는 번뇌의 길의 길을 뜻하고 있다. 불가에서 말하는 ‘직지망월’이란 말이 연상되는 이 시에서 우리는 길에서 길을 버리고 또다시 길을 묻는 행자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고 평했다.

이 시의 구조적 유형은 1연 5행의 시로 비교적 짧지만 ‘지겨운’이란 형용사로 기호를 닫아놓고 있어 눈길이 간다. 언뜻 앞서 어떤 말이나 생각을 열어놓았다가 닫은 앞 괄호를 고의적으로 빼 놓음으로서 우주의 공간이나 땅과 진공 상태에 놓인 느낌이다. 시인은 한국 전통적 유교나 불교적 사상에 심취하여 윤회사상에 남다른 자각을 하고 있기에 모든 것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와 유사한 소재로 표현된 시를 비교 해본다.

첫째 길은 훗날 걸을 수밖에/하지만 길은 길로써 통하는 법이니/굳이 남겨진 길로 돌아올/필요 있겠나./멀고먼 훗날 어딘가에서 나는/한숨 지며 오늘 일을 말하고 있으리라./노란숲속에 두 길이 갈라져 있었는데/내가 인적이 덜한 길을 택했었기에
                                                   -「The Road not Taken」 부분

로버트 프로스트는 선택의 중요와 비록 남겨진 길이 같을 것이라는 자신과의 타협을 두고 있는데 반해 시인은 길은 끝이 없지만 주어진 시간에 대한 한계를 실감하기 때문에 오직 걸어 온 길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이라며 가기 힘든 다른 길도 마다하지 않고 걸어서 확인하려한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깊은 내면의 세계를 두드리며 걸어가며 운명은 神이 점지한 정해진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화자는 운명을 극복하고 의지로 개척하며 현실에 충실하다. 느닷없이 걷는 것도 걸어온 길을 멈춰 서서 뒤돌아보는 생각의 쉼일 뿐 다시 걷는 연속일 뿐이다. 불현듯 찾아 온 존재의식의 혼동, 그것은 생활에 대한 다양한 변화가 또 다른 자신을 거울에서 발견하는 일로 자아의식의 내면과 갈등을 보인다. 눈앞에 놓여 진 길을 마음으로는 쳐다보지 않는다는 변증법적 수사로 주어진 길에 대한 강렬하고도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사명처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다.
길 아닌 길이 없다는 것도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대립하면서 선택의 결정이 쉽지 않는 것, 생존의 진정성을 내제하여 훗날 다시 어느 지점에서 후회하고, 반성을 해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니 느리지 않으면서도 급하지 않게 떠나고 있다. 『황벽선사 전심법요』의 팔만사천의 길이란 팔만사천법문으로 팔만사천가지의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며 교화하고 맞이해서 이끌어 들이는 문이다. 본래는 일체의 법이 없었기 때문에 없어졌다면 없는 것이고 다시 생성한다면 더 많은 길의 갈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는 길에 대한 의구심이나 위로의 강한 부정이 긍정을 잉태하듯 자신의 존재를 외면하거나, 버리려는 마음은 새롭게 출발하려는 강한 의지라고 보며 기호를 열어 놓고 팔만 사천의 길 중 하나를 취하여 가는 길은 지상에서의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열어두고 여러 갈래의 길이 나중에 하나가 될 것을 굳게 믿는 긍정의 발산이다.

門을 열고 들어가면 門이 나오고 그 門을 또 열고 들어가면 또 門이 나온다 門은 항시 닫혀 있고 닫혀 있는 門은 항상 열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門을 만들고 만든 그 門에 빗장을 건다 빗장을 건 門 앞에 서서 나는 그 門에 대하여 짐짓 골똘하게 생각한다
門은 왜 있는가 門은 무엇인가라고 고개를 외로 꼬기도 하고 또한 간간히 끄떡이기도 한다. 구름은 흘러가기도 하고 멈춰 서보기도 하며 여러 모양을 만들어 보기도 하다가 흩어버리기도 하면서 여전히 심각하다
                                                   -「門」전문

시는 쉽게 읽혀져야 한다는 전재의 통념이 무색해졌지만 함축한 주제가 시에 우러나와야 좋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읽혀지는 시가 있지만 뜻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난해한 시도 있다. 낭만적 풍유의 서정시만이 현대시의 줄기라고 단정할 수 없듯이 ‘미래파’라고 명명된 요즘 젊은 세대의 시 변형은 미사여구나 화려한 어휘로 형태의 비틀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실험적 전위시로 일관해 온 박상순 시인의 시 중에서 한 편을 비교해 보면 사물들의 기호들을 출현시켜 기표 차원과 기의 차원에서 호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나는 유리병, 동 파이프, 고무 벌레, 붉은 벽돌, 거미줄, 안개, 비상구, 접시, 세탁소, 푸른 항구, 불난 집, 가방, 끈 떨어진 꾸러미, 자동차, 사라진 구름, 발, 발, 발, 밤, 밤, 밤.
                                                   -「빨리 걷다」전문  

단순하게 보면 자신을 여러 사물들에게 대입하고 있다. 이 시에 내재된 것은 빨리 걸으면서 발이 밤을 파생 시킨 것이며 기호가 기호를 낳았다고 볼 수 있는데 특별한 기호가 특별한 세계를 호출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최락완 시인도 실험적인 시를 추구하고 있다. 신구 조화를 이루려는 목적으로 시의 흐름 앞에 오는 시의 본질적 구조 문제, 산문이나 연과 행을 무시하고 문자 메시지형 어휘들과 난잡함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인의 시를 형식적 면에 치중하다 보면 시 안에 숨겨진 내연의 세계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시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모호한 뜻이나 이중적 해석을 경계하면서 의미를 쉽게 전달하고자 할 때 혼용해서 쓰게 된다. 한문의 ‘門’은 ‘文’과 같은 기원이다. ‘文’자는 주로 ‘문자’ 또는 ‘무늬’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해가 드나드는 ‘문’ 즉 ‘출입문’이나 ‘통로’를 의미하는 글자로, 우리 머리 정수리에 있다는 숨구멍인 정문(頂門)의 모양과 의미를 나타내는 글자였다. 단전을 중심으로 진기를 연마하는 전통의 수련법에서는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소위 ‘양신(하단전에 자리 잡은 빛으로 된 도체라고 석문호흡에서는 설명한다)’을 발신하게 되는데 이 양신이 나오는 문이 머리 한 중앙에 있는 ‘정문(頂門)’이다. ‘文’의 옛 글자에서 가운데 ‘心’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다 마음공부를 포함한 수행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으로 ‘문’이라는 말의 개념은 정신수행의 단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라는 뜻으로 사람의 머리 위 정수리에 있는 숨구멍에서 기원하였다. 이것으로부터 ‘문’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고 쓰임이 확대되어 사람이 드나드는 모든 통로를 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단순한 열고 닫는 출입문의 ‘문’이 아니라 몸의 ‘문’을 말하며 또 다른 ‘문’은 마음을 비롯해서 열고 닫는 깨달음에 귀결이다. 실제로 화자는 동양사상의 여러 학문을 통찰하였고, ‘道’에 심취하여 정진하면서 참선을 수행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몸(門)을 열고 들어가면 마음(門)이 나오고 그 마음(門)을 또 열고 들어가면 또 새로운 정신(門)이 나온다. 정신(門)은 항시 닫혀 있고 정신(門)은 항상 깨닫고 득도하기를 바란다.’로 해석된다. 즉, 몸과 마음, 정신이 삼위일체로 하나 됨을 이루고 싶어 하는 화자의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다. ‘門은 왜 있는가 門은 무엇인가라고 고개를 외로 꼬기도 하고 또한 간간히 끄떡이기도 한다.’ 나(門)는 왜 존재하며 육신과 정신의 상생(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를 깨치기 전의 많은 의문들을 풀려고 한다. 점차 자신의 번뇌를 다스리려는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의 수행하는 지속적인 모습으로 심각하다.  

박산에는 괴상한 물이 많다. 서쪽에서 300리를 오면 말산이 있는데 각설하고 눈 넷에 육손이를 먹으면 상화가 낫는다./또 서쪽에서 300리를 오면 총롱산이 있고 또 동북쪽에서 오면 조곡산이 있다 조곡산엔 홰나무와 오동나무가 있다./북쪽에서 돌아오면 초산이 있고 또 동쪽에서 오면 성후산이 있다 조가산을 가려면 성후산에서 서쪽으로 500리를 와야 한다. 직산에는 금과 주석이 많은데 조가산에서 서쪽으로 500리를 와야 한다./또 동쪽으로 10리를 오면 역산이 있고 또 동쪽으로 10리를 오면 척산이 있는데 큰 사슴이 많다. 또 동쪽으로 10리를 오면 양여산이 있는데 여기서 나온 물이 황하도 되고 낙수도 된다./또 동남쪽에서 10리를 오면 고미산이 있고 또 동북쪽에서 오면 승산이 있다. 또 동쪽에서 12리를 오면 양허산이 있는데 금이 많다./박산에서 얼양을 마시고 한마리의 검은 개를 상류에서 흠향하고 한마리의 암탉은 하류에서 흠향한다.//모두들 바치시길,              
                              *산해경 변형
                                                   -「*중차오경」전문

대학에서 《산해경(山海經)》을 한 한기 동안 살펴 본 적이 있다. 최초의 마고대성인 부도지를 통해 우리 조상은 지금처럼 한반도가 아니라 좀 더 큰 대륙의 땅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삼국유사》를 통해 한반도에 건국신화가 있다면 《산해경》은 중국의 신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으로 나뉘며 중국 각지의 기이하고 특별한 것들을 기록하였다. 중국의 반(反)주지주의의 산물, 불로불사의 신선, 영생의 유토피아, 이백(李白)의 자유와 환상 등 낭만적이고 신비적인 것들의 문학, 예술적 실재를 가능케 했던 정신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시를 보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배경을 살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중차오경’은 《산해경》172쪽에 나오는데 박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16개의 산이 있고, 2,982리로 널리 퍼져있다. 첫 산인 구상산이라는 곳에 초목이 자라지 않고 괴상한 돌이 많다. 말산은 중차칠경에 나오는 지명으로 휴여산에서 동쪽으로 약 800여 리를 가야 하는 곳이다. 화자는 가야 할 곳을 와야 하는 곳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눈 넷에 육손이를 먹으면 상화가 낫는다는 것은 동산경 갈산에 사는 주별어(珠蟞漁)로 맛은 시고 달며 이것을 먹으면 염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박산 지역 사람들이 독특한 제사예법을 설명하는데 샤머니즘의 일환이거나 풍습으로 해석된다.
이 시에서 꼭 짚어야 할 주제는 두 가지로 하나는 화자가 자아의 정신과 보이지 않는 신(神)과의 교감이다. 책에서 취한 지식을 나름대로 풀어 놓고 다시 ‘모두들 바치시길’하며 독려하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신에게 복을 빌거나 평화를 가져다주는 주술적인데 자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편안하기를 바라는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의 개념이 화자의 의지라고 판단된다. 또 한 가지는 무병장수를 바라는 염원으로 조곡산에 문동(虋冬)이라는 풀이 많이 자라는데 이것이 약재로 쓰인다. 성후산에 흰 망초는 다년생 초본으로 진통제에 쓰이는 약재이다. 화자가 인술을 다루는 한의사이기 때문에 병을 낫게 해 주는 약초나 생물들을 찾는데 열중한다. 젊은 날 위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화자의 오랜 숙원이 병에서의 고통을 해방시키기 위해 《산해경》을 숙지하고 명약을 찾아다니는 일에서 시상을 잡았을 것이다.      

《산해경》의 변형이라고 주석을 달아 이해하겠지만 ‘중차오경’을 차입했을 때는 원형에 충실한 내용과 기법을 담아야 한다. 시의 제목도 내용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상징적 의미를 나타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후에 자신의 시에 담고자 하는 뜻을 시적 표현으로 풀어내면 더 좋은 시가 될 수 있겠다.


3.

작품에서 시인이 살아가는 일상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치열하게 스스로와 대립하거나 혼란스러워 하는데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하는 환경에 따른 정신적 감수성이라도 본다. 시인은 세상의 혼탁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을 열고 명상으로 빠져들어 정적인 수양을 지속하려 한다. 그 연유를 이번에는 시의 가족과 생활의 배경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제 마음보다 더 큰 우주를 떠매는 달팽이여
     도대체 슬픔이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불온함에 대하여」부분

불온하다는 것은 온당하지 않고 험악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달팽이에 비유된 고통의 등짐을 풀어낼 수가 없다. 슬픔은 한바탕 소용돌이 친 흔적이 아니라 지속적인 아픔이기 때문에 험악하다는 것이다. 이 슬픔이나 험악한 원인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유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꿈에 유리라는 말은 너무 냉정해요 차라리
경찰이라는 말이 더 정감이 가요 경찰은
그래도 사람이잖아요 경찰이라고
하더라도 애인이
변심을 하면
 
낮술에 취해 울기라도
하잖아요 유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유리라는
말은 지독해요 차라리
 
백수광부라든가 깡패라는
말이 더 정감이 가요 깡패는 그래도
애인은 사랑하잖아요
 
그런데 유리라는 말이 사실은
처량한 달빛이란 닉네임을 가진 건
모르시죠 처량한
 
달빛이란 닉네임은 어둠이
어둠이 게슴츠레 먹물처럼 번져오면
말이죠 그 때부터 진짜로 처량해지는 거예요
진짜로 처량한 듯 머리를
 
방바닥에 짓찧으며 숨넘어갈 듯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다 필요 없어 다 필요 없어
라고 무조건 다 필요 없다는 거예요 참나 웃기지 않아요
유리라는 말은
                                                   -「유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전문

이 시는 전체 6연으로 되어 있지만 각 연마다 서로 독립되어 전체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연 갈이만 했을 뿐 하나의 서술적 나열로 이어져 있다. 연 갈이와 행갈이가 부자연스러워 오히려 특이하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육체의 불안정 때문에 말을 더듬거린다던지 감정에 격한 모습을 정화하지 않는 모습 그대로 표출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하나의 객체 사물인 ‘유리’는 ‘유리’와 대립되는 경찰, 애인, 백수, 깡패의 인물과 대립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리는 투명한 것, 속을 보이게 하는 것,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차가움의 상징이지만 화자가 말한는 ‘유리’는 박상륭의 소설『죽음의 한 연구』의 지명인 ‘유리(羑里)’이다. 이 지역 촌장을 죽이고 자기가 촌장이 되고 다시 죽음 당하는 주인공 ‘그’를 대비시켰다. 그가 득도한 것은 주역으로 선에 치중해 있으며 물리적인 삶은 신비주의에 가깝고, 사는 곳은 주술적인 것에 강하고, 신체적 삶은 그리스도 예수의 행위를 닮았다. 앞서 살펴 본 ‘불온함’은 ‘유리’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잔혹함과 냉혈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작품에서 해탈을 위해 존속상해를 서슴없이 행하며 자기 자신을 죽이면서 영원한 삶이 되는 불멸성을 가진 인신(人神)이 되기 위해 우상을 파괴하려는 관습, 득도를 위해 끊임없이 불화가 야기되며 치명적인 죽음이 유일한 해탈의 방법이라는 가치관이 바로 불온함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인에게 ‘현경’이와 ‘채림’이라는 두 딸이 있는데 큰 딸인 현경은 ‘난독증’이라는 병으로 사회생활이 어려워 누군가 보호를 해야 하고, 관찰해야 하는 특수한 처지에 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으며 그 고통은 평탄한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없는 치명적인 아픔이었다. 사무적이고 고지식한 경찰로 비유되는 아버지가 아무리 내성적이고 차가워도 딸을 평생 바라봐야 하는 눈길은 슬픔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자식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여 떠나는 것이나 혹은 등을 돌렸던 것은 마치 소설처럼 득도를 위해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며 살아가는 천형의 아픔으로 사는 것,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극한점에 ‘유리’가 차가운 자신보다 더 차가운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놀라고 있다. 정상적인 거리를 두지 못하고 말을 다 잇지 못하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근원지이다. 방바닥에 머리를 짓찧는 아픔이 딸만의 고통이 아니라 아버지는 제 삼의 처량한 달빛이 된다. ‘유리’의 행동은 아버지의 또 다른 자신에게 해탈을 위한 일상일거라고 기가 막힌 웃음을 짓는다. ‘유리’는 화자의 번뇌이면서 득도의 대상으로 다가오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가족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굴절된 삶에서 참된 사랑과 기쁨을 낚으라는 발현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하며, 술을 따른다)
어린 새끼는 어찌하여 저편 벼랑에 매달려 있는가(라며, 또) 술을 따른다
(매정하게) 다 지워버린다 (없다 라며,) 술을 따른다
확실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 라며, (술을 따른다)
벼랑은 저 만치서 웃고 있다

웃는 벼랑을 위하여 술을 따른다
술을 따르는 손모가지를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해는 오직 그 자리에서 이글거리는데
누구도 막말을 하지 않는다
 
햇님이 입을 다 봉해버렸기 때문이다
딴은 바람이 세차게 불수도 있고 (장마비도) 내릴 수 있다
                                              -「벼랑을 위하여」부분

내 가슴엔 봄날에도 하냥 병이 깊어             -「흑백사진, 혹은 장미에 관한 기억」 일부
너와 나는 또 너의 나는 또 나의 너는 왜, 항상 이/모양으로 조우해야 하는가    
                                              -「꽃 잎」일부  

화자는 이내 쓰러져 죽을 것 같은 딸을 바라보며 술로 달래고 있다. 바람은 딸의 흔들리는 정신으로 벼랑은 죽음의 문턱이다. 존재의 상반된 수식어가 죽음이라면 벼랑의 선택은 빠르고 간결하며 잊어버리는 최후 수단이겠지만 스스로의 육체를 비존재에 의탁하려는 막말을 한다. 맑은 영혼이 ‘해’라면 일반적인 인간의 도덕적 굴레와 정신에 ‘바람'과 ‘장마비’가 내린다. 온전한 정신으로 어둠의 시간에 잠길 수 없어 술을 마시게 된다. 밤마다 과음으로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버지, 술은 자신 속에 비존재의 벼랑 앞에 서서 갈등하기 때문에 술은 딸의 아픔이며 자신의 선혈이다. 정신에 깃든 행동을 전환하지 못해 심리적 공항을 느끼게 된다. ‘해’는 침묵으로 시인과 시인의 가족을 바라보는 눈길이며 ‘햇님’은 최소한의 관심으로 시인과 함께하는 벗이다. 이를테면 주변의 의학과 문학이 고통을 풀어내는 유일한 해결의 정점이었다. 과거의 추억은 아름답다는 것은 계절이 오고 가듯 삭힌 괴로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흑백이란 과거는 현재에 바탕을 두지 못하고 마음의 병은 문학으로 환유되어 자가 치유를 하고 있다. 평범한 외형과 아픈 고통의 내면을 이겨내야 하는 특별한 자기 수행의 필요를 느낀다. 내면몰입성의 명상으로 참된 자아를 발견하여 행복했던 일들로 사고 전환하면 화자가 바라는 ‘너와 나’내 기쁜 마음으로 평화로운 세상과 조우할 것이라고 믿는다. 


4.

현재의 삶이 전생에 생각과 행위에 의존하여 낳은 결과라고 믿는 최락완 시인의 시세계를 놓고 문단의 평가는 분분하다. 실험적 시의 시도와 정제되지 않은 운율 파괴를 진행한다는 등의 논란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중심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며 가장 강력한 끌개 패턴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택의 갈등에서 평온함을 찾지 못하는 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홀로그램으로 한쪽에 서 있는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른 쪽에 서 있는 사람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가 정신 나간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은 그것처럼 다른 위치에서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통상적인 반응일 뿐이다.  
 
                                                  우리는 꿈의 재료와도 같은 것,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인생은 꿈에 쌓여있다.
                                                  세익스피어 -  <템페스트>의 4막1장

지나가는 것은 죄가 아니다, 라고
꽃은 피었다 지고, 또 지었다 피기도 하고

<슬픔이 극도에 다다른다고 얘기하라
분노가 세상을 덮는다고 얘기하라>
,라고
구름은 여러 형용으로 생멸을 자재한다
,라고,  할 말이 없으리
<구름을 빗대어서 많은 말을 꾸며 왔다>

그러나
그러더라도
지나가는 것은 잘못이 없다.

내가, 지나감으로
                                                   -「정신병자를 위한 습작 43」 전문

이 시는 여러 연작시 중 화자의 심리 상태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으로 육지와 닿지 않는 외딴 섬에서 마법으로 지배하는 늙은 주인공 ‘프로스페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극이다. 먼 과거에 일어났던 섬 바깥의 정치적 모략, 배반, 권력의 찬탈이야기이다. 자신이 통치하던 나라를 빼앗았던 악당 일행을 태운 배가 주인공의 마법에 의해 섬 가까이에서 난파하자 복수의 기회가 찾아오지만 모든 것을 용서하는 그의 관용, 거기 얽힌 젊은 남녀의 사랑을 통한 화해, 주인공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요정과 미개인의 해방 등을 통해 이 극은 로맨스의 세계를 완결 짓고 현실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4막 1장의 내용을 부제를 단 이 시는 현실적이지 못한 것, 이상적인 것, 시적 상상력과 창조정신의 추구를 꿈으로 비유했다. 인간은 생물과 달라서 유아기와 성장기를 거쳐 무한한 꿈을 펼치는 성인이 되지만 모두 동일하지는 않다. 때론 과정을 다 거쳤어도 정신발달이 되지 않거나 신체적 결함에 따라 꿈을 피워보기도 전에 꺾일 수 있다. 넓은 들과 바다가 아닌 좁은 공간에서의 하늘, 구름은 그 공간의 시야에서만 존재한다.

이 시는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에 기인한 무의식에 있어 문자가 기능에 연관되어있는데 여기서  꿈을 가능하게 하는 전재조건은 왜곡, 또는 변환이라고 했다. 소쉬르식으로 말하면 담론 속에서 항상 작용하고 있는 기표 아래로 기의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 꿈이다. 무의식이란 기표의 활동으로 기의에 미치는 영향은 선천적이고 고유한 시의 기능으로 간주되는 압축(Verdichtung)과 의미작용의 방향전환으로 환유 속에서 가능해지는 전치(Displacement)이다. 환유는 프로이드가 말했던 것처럼 무의식 검열을 피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다. 허구적 이미지들이 무의식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 그들의 변별적 특징들이 의미작용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화자는 공상, 또는 백일몽 같은 꿈을 구름에 빗대어 많은 말을 꾸며왔다고 고백한다. 어떤 행위들은 도덕적 판단의 양심에서조차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처음과 끝의 도치는 자신의 과거와 그 과거에 행해진, 이미 지난 일에 실제적으로 느끼는 죄의식이 깔려있는 한편, 극도의 슬픔으로 분노해서 상응한 죄의식을 떨쳐 버리고 있다.

나는 어디로 또 나가고 없다 하물며 둘만 모르는 알지 못하는 추억을 다짐한다
                                              -「상객」일부

미친 감옥 같은 봄 꽃 가득할까? 몽환의,
그 꿈들 드디어 화려하네
늘어진 도화의 과육, 그 매혹을 오늘
맛 보겠네

환멸, 그 아름다움이라니
                              
                                                   -「환멸, 그 아름다움이라니」 부분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게 되고, 이것의 생성으로부터 저것이 소멸되는 ‘나’와 또 다른 ‘나’는 죽어 없고, 그 죽음을 바라보는 ‘나’는 상객이 되어 과거에 대한 상념을 빗속에서 쓸어내리듯 눈물을 흘린다. 과거 걸어 온 길의 연속으로 현재에 자아가 있고, 현재는 필연적으로 놓여 가야 할 길이 있다. 미래는 과거의 봄을 지나 득도의 결실로 꿈의 오늘에서 먼저 맛보고 있다. 번뇌를 떨치고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는 환멸은 허무하지 않고 아름답다고 했다. 화자의 상상을 아무도 깨뜨리지 못한다. 몽환으로 소설 같은 일들을 꿈꾸고 있는 득도의 완성은 현재진행형이다.
고통과 아픔은 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애고에서 오는 것이고 애고와 동일시되는 마음의 한계 때문에 애고를 초월한 마음의 패러독스를 넘어야만 ‘존재’는 마음의 무한한 절대성 속에서 스스로 빛나는 자리에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모두의 눈멀음에 대한 자비심이 우러나와야 우리는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평화로울 수 있다. 웃음은 자신이 희생당했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떠오를 수 없는 것이며 좀 더 포용력 있는 관점에서라야 솟아나는 것처럼 ‘위대한 존재’는 침묵 속에서 평화를 실어 나르며 예술이란 영혼을 짓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합작으로 빚어내는 것으로 사랑 없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락완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봤다.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시인을 관심 가지고 지속해서 지켜보면 제 2막, 제 3막처럼 변화해 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것이다. 참 ‘나’의 존재를 찾아 가는 길에 선 시인, 말없이 입가에 웃음 머금으며 시인의 길을 걸을 것이다. 시인이 독창적 불화의 지속성을 어떻게 시에 담아 낼 것인지 지켜보고 싶다. 끝으로 실존적 의미의 번뇌와 해탈이 주는 평화를 누리고, 삼라만상의 미적 탐구로 문학에 접목시켜 풀어나가기를 바란다.

참고
1) 『미래파』 권혁웅 비평집  문학과 지성사.
2) 한자문화교육원 설문해자이야기.
3) 『산해경(山海經)』 정재서 역주  민음사.
4) 소설『죽음의 한 연구』상. 하. 박상륭  문학과 지성사.
5) 데이비드 호킨스『의식혁명』 이종수 옮김   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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