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 상인 3

2006.07.16 10:03

한길수 조회 수:687 추천:80


엘에이 올림픽과 윌턴 코너에 있는 성 그레고리 성당
일요일마다 노부부가 입구에 펼쳐 논 청과물이 싱그럽다
손수 담은 청국장부터 과수원에서 가져다 파는 과일까지
고향 향기를 베어 물듯 먹었던 찰옥수수와 노란 참외
암꽃수술 같은 웃음 속에 누런 이가 햇살 받아 뜨겁다
야외용 우산으로 가려도 고무줄 묶인 호박잎이 시들어 간다
벤 차량에 친 천막이 그늘 되지 못한 노부부 입은 바지 같다

이국 낙타들은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노점 앞을 지나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느님 아들딸이라고 영성체를 받는다

땀으로 일구어 낸 사막 텃밭 열매가 익듯 살도 익어갔을 터
결실보다 더 앞선 욕심들이 모래바람 뒤집어쓰고 너덜거리자
리커 스토어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꺼내 로토를 샀을지도
애타는 목마름으로 번호를 맞춰보며 풀지 못한 갈증 느끼고
오아시스처럼 보였을 수만 전구가 켜진 카지노 불야성 찾아
슬럿 머신 앞에 앉아 원 없이 수확하고 싶은 욕망의 과수원

해 가린 오색 샹들리에가 빛나는 궁전 지붕과 에어컨 솔바람
서양색시의 쭉 빠진 몸매와 초미니 스커트에 공짜 음료수

어느 날 신문에 낯익은 얼굴 앞에 전구 속에 빠진 내 동공
노부부가 아들과 함께 카지노에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세상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에게 꼬리표를 달아 주려한다
주님 부름에 순종했다하나 조금 일찍 고향 찾아 떠났을 뿐  
미국이든 외국이든 이민자들이 그 문화에 맞춰 산다는 것이
쉬울 수는 없겠지만 가슴에 자란 외로움만 주렁주렁 열릴 때
기댈 언덕 하나 있었다면 예전처럼 검은 얼굴 보며 웃을 텐데  
한쪽에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 보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하다

며느리와 손자들이 보던 성당 앞 노점도 한 달 보름 지나자
그 자리에 누가 마시고 버린 빈 물병 하나만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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