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05 15:37

몸의 신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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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점 wrote:
>피부 속에 숨겨진 생명의 비밀을 생생하게 만나고 싶어 혜화동, 몸의 신비전이 열리는 곳,
>국립 과학관 입구에 들어섰다.
>죽은 후의 몸을 그대로 기증한, 특이하고도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던 사람들, 그들의
>몸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어떤 파문이 일까 그 점이 궁금하기도 했었다.
>
> 골격, 근육 장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실제, 사람의 모습 가까이 있기도 하고 각각 분리되어 있어 고기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하여 마음이 아주 복잡 미묘했다.
> 복잡하고도 미묘한 장기, 과학적으로 구조적인 골격, 신경이 뻗어있는 길, 섬세한 핏줄들의 행로를 바라보면서 기이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
> 그의 몸에 피가 다 빠져나가기 전까지의 그의 삶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떤 모델은 얼굴은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몸은 골격만으로 버티고 있기도 하고 뼈대가 빠져나온 근육만으로도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기도 했다. 인체를 해부하고 표본하는 기술이 놀라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
> 어떻게 한 것일까 책자를 들쳐보니 프라스티네이션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 죽은 몸에서 수분을 다 빼내고 특수 처리된 플라스틱, 실리콘 고무, 폴리에스터 등을 인체내에 주입하여 생전의 인체 특징을 영구히 변하지 않게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
> 악수하자는 듯 손을 내밀고 있는 어느 모델의 눈과 마주쳐 가슴이 선뜻했다. 강렬하게 번뜩이는 눈빛이 마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 이건 그냥 물질일 뿐이야. 그런 생각으로 앙상한 뼈가 그대로 드러난 그의 손을 잡으려는데 친구가 내 옷자락을 잡아챈다.
>
> 살아있으므로 해서 너무 솔직하게 반응하는 몸에 대하여 때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떤 의식의 지배아래 있다고 믿었던 몸을 마음에서 떼어내어 독립된 존재로서의 몸의 가치를 관찰하는 일이란 생경하고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
> 그 중에서 척추 뼈를 관찰하는 일이 내겐 흥미로웠다. 셋째 뼈와 넷째 뼈 사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부분에 약간의 문제를 일으켜 허리를 아프게 했던 곳,
>아! 그 어긋난 뼈가 주변의 신경을 누른다고 하더니 뼈 양쪽으로 가느다란 무명실처럼 뻗어나간 신경줄기를 보면서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
> 골 기퍼나 링 체조선수의 몸을 볼 때는 거짓말처럼 파문이 일었다.
>어머! 팔 다리 근육 좀 봐! 너무 힘이 있고 멋있다. 율동적인 몸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도 20대 젊은 남자의 몸이리라 상상했었는데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몸은 모든 문화와 예술의 씨앗이 아니던가.
>
>선생님의 몸을 구경하다가 실없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시원찮은 골격이나 눈 주위의 피부의 낡은 상태로 보아 늙은 선생님의 몸 같았다.
>평생을 책과 씨름하며 운동이 부족한 듯 빈약한 몸 아래 쪽 배아래 힘없이 매달린 남근이 그의 고단했던 삶을 말하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
> 서양장기판 앞에 두 손을 턱에 고이고 앉아있는 모델도 있었다. 누구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어진 듯한 뇌 조직과 조직 사이의 신경세포를 유심히 바라보며 문득 호기씨의 뇌 구조나 근육을 벗겨낸 골격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
> 그런데 참으로 많은 모델 중에서 제대로 된 여자 모델은 딱 한사람이었다. 임신 5개월의 태아를 몸에 담은 채 숨이 멈추어버린 여인의 배, 자궁 속을 들여다보았다. 생명의 신비와 더불어 메마른 슬픔 같은 게 몰려왔다.
>아! 이 여자는 말이야, 아직 덜 여물긴 했으나 사랑했던 생명의 열매와 함께이니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 조금은 덜 외로웠을라나.
>
> 모델들을 마음에서 온전히 떼어내어 물리적인 몸으로만 바라보려 해도 자꾸만 머릿속에 거미줄이 쳐진다.
>석탄가루가 낀 듯한 허파를, 튼실하지 못한 심장을, 혈관이 터진 뇌를 보면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
> 앗! 그런데 이게 도대체 뭐니? 뿌우옇게 살집이 좋은 듯한 나이가 들었음직한 남자의 몸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세로로 12등분 된 채로 정육점의 고기처럼 매달려있었다.
>잠깐 눈을 감은 채로 구토가 나려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
> 특정인에게만 허용되었던 우리 몸의 장기, 그 생명의 비밀들을 공개하면서 몸의 신비전은 우리에게 몸의 신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기 기증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을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
>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하여 친구와 나는 체험교실 앞에 나란히 섰다. 난 창구로 손을 넣어 1300 그람 정도의 성인의 뇌를 만지면서 요리조리 뒤집어보았다. 무슨 생각이 들어있었을까, 살아생전 활개치지 못하고 그 사람의 뇌 속에 잠들어있었을 수많은 정보들,
>
> 국립 과학관을 나오면서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느 신체 기증자가 했다는 말들이 가슴에 박힌다.
>
> 나는 언제나 매장되는 것보다는 죽어서 과학을 돕는데 필요한 존재가 되고싶었습니다
> 어두운 땅 속에서 벌레들이 내 몸을 먹어치우는 것은 생각만으로 끔찍합니다. 내 몸이 이런 방식으로 의미있게 사용되어 안심이 됩니다.
>..................................................................
>우유 한잔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저녁도 굶은 채로 몸의 신비 전을 관람했었는데 배가 고픈 줄도 몰랐죠. 내 마음은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넘나들다가 공짜로 부여받은 오묘한 내 몸의 장기들을 새로운 마음으로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 다친 엄지발가락 탓인지 몹시 피곤하여 어디론가 앉아서 휴식을 취할 곳이
>필요했지요 신발을 끌듯이 걷다가 찾아 들어간 곳이 시골 순두부 집이었거든요
>믿을 수 없는 점은 말이죠. 마음과는 달리 내 살아있는 위장은 시골 순두부를 너무나 맛있게 받아들이더란 말입니다
>
>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죽은 후에 신체를 몽땅 기증하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구요
> 그랬더니 한마디로 싫다 였죠
> 친구가 내게 물었습니다. 그럼 너는 신체를 그렇게 기증하고 싶으냐구요
> 내 대답은 한마디로 '모르겠어' 였죠.
>
> 싫다, 좋다 가 아닌 '모르겠어' 가 밤새 나를 괴롭히며 꿈속을 헤매게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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