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교의 <소리지르는 돌> by 이숙진 수필가

2006.08.20 10:17

김영교 조회 수:483 추천:33

                          소리 지르는 돌
                                                     이숙진

  친정에 갔을 때다. 언제나 버릇처럼 書架를 뒤지다가 제목에 이끌리어 얼른 산문집 한 권을 빼 들었다. 在美詩人이며 수필가인 남정(南汀)의 ‘소리 지르는 돌’이다.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라는 성서를 떠올리며 소제목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으니 급한 김에 에필로그를 먼저 읽었다.

     “모양도 냄새도 없는 무생물이었던 지극히 조그마한 돌 하나가 생명의 빛을 받아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소리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돌로 다듬어져 가는 흔적들입니다."

  지천명을 훌쩍 넘기고도 숨소리도 못 내고 살고 있는 터라, 그냥 돌이 아닌 소리 지르는 돌이 되고자 하는 저자에게 꽃잎 같은 이야기 몇 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문화권에서 유년을 보냈다는 공통분모와, 신앙적 양분을 과일의 맛과 향기와 색깔처럼 맛있게 그려낸 그의 여문 부드러움 또한 정겹게 다가왔으니.
  그 후 내가 운영하고 있는 동호회 인터넷 카페에 우연히 그가 노크를 해 왔으니 이 무슨 운명적 만남인가.

  생명의 환호가 초록 숲으로 일렁이는 유월 어느 날, 한국에 와 있다는 정다운 목소리 저 끝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변화된 청계천을 걸어 보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반기는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다.
  삼일빌딩 라운지에 앉으니 한 폭의 그림 같은 청계천이 펼쳐진다. 은하를 옮겨 놓은 듯 반짝이는 서울의 밤으로 빠져든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가 이만할까. 미라보다리가 이만할까.
  감동의 시어들이 넘실대는 그의 시상 속으로 조심스레 끼어들어 시간을 망각케 한 팔짱을 풀게 하고 식사를 권했다. 그제야 콩나물국이 그리웠노라, 나박김치가 그리웠노라, 변변찮은 대접에도 그리움의 꽃을 피워대는 그의 넉넉한 마음을 읽는다.

  청계천을 걷기 위해 빌딩을 빠져나와 산책로에 내려섰다.
  신기루처럼 너울거리는 상큼한 바람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시공을 아우르는 묘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잠시 빠져든다.
  남정은 “여기는 강아지는 동반 할 수 없겠지요?” 하며 물고기에 먹이를 줘도 되느냐, 물에 들어가도 되느냐 등 자기가 지켜야 할 사항을 궁금해 한다.
  아이들이 숨바꼭질해도 될 만큼 쑥쑥 자란 물풀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는 “호랑이 하나 존재하기 위해서 멧돼지가 수 백 마리 살아야 하고, 멧돼지 수 백 마리를 위해서 다람쥐 수 만 마리가 살아야 한다. 이 다람쥐 수 만 마리를 위해서는 도토리나무 수백만 그루가 있어야 한다.” 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숲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나는 옛 어른들이 ‘아침거미는 재수 있다.’ 며 잡지 않았고,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 둔 것이나 ‘세숫물을 많이 쓰면 산신령이 노한다.’ 는 俗信도 모두 생태계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이렇게 두런대며 징검다리 사이에 생기는 물보라의 아우성을 바라보니, 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 물소리같이 느껴진다.
  다정한 연인들이 물 위에 콧노래를 통통 터뜨리며 걷고 있는가 하면 손에 손을 잡고 빼곡히 앉아서 깊어가는 밤을 수놓고 있다.
  청소년 문화를 골목에서 광장으로 이끌어 낸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던 일이며, 여린 가슴들을 이토록 순화시켜주는 열린 공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을 들여다보니, 더위에 찌들고 오염으로 숨 막히던 마음을 흔들어 씻은 듯 보송해진다. 곳곳에 무지개 빛 조명을 설치해서 하얀 물줄기가 다채로운 색으로 일렁이니, 그의 감격어린 목소리만큼 분위기가 상승한다.

  아치형 다리 밑에서 처음으로 노란색 완장을 찬 관리인을 만났다. 그는 달려가서 두 손을 잡으며 “너무 수고 하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하며 고향의 이웃 아재라도 만난 듯 겅중겅중 뛰니, 꼭 청계천을 그 관리인이 만들어 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십 대에 미국으로 유학 갔던 여학생이 이순(耳順)이 되어 돌아왔으니, 고국의 바람 한 자락 달빛 한 움큼도 소중하고 감사 할 수밖에.
  다리위에 올라서니 안내그림판이 보인다. 일일이 확인하고 나머지 하나를 몰라서 기어이 지나가는 청년을 불러 세운다. 고개를 갸우뚱 하던 청년이 ‘용변금지 ’같다는 말을 하자, 유치원생이 보물찾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한다.
  
  시나브로 현묘(玄妙)했던 빛들이 가늘어지며 현실의 시침을 똑딱이게 하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청계천을 빠져나온다.
   한강의 기적처럼 청계천의 새로운 도약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말과 함께 “ 3%의 소금기가 바다를 썩지 않게 한다.” 라고 하던  환경지킴이  남정(소리 지르는 돌)의 말이 유난히 가슴을 파고든다.
  어떻게 살아야 3%의 소금이 되어 세상을 향해 작은 소리라도 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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