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란 무엇인가 / 구인환

2008.08.12 00:10

김영교 조회 수:571 추천:38


☞ 정의

어떤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고 개인적인 서정이나 사색과 성찰을 산문으로 표현한 문학.

☞ 역사

수필은 중국에서는 남송(南宋)의 홍매(洪邁)가 쓴 ≪용재수필 容齋隨筆≫에서 비롯되고, 서양에서는 1595년 몽테뉴(Montaigne,M.E.de)의 ≪수상록 Essais≫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고려 때부터 서설(書說)·증서 (贈書)·잡기(雜記)·찬송(贊頌)·논변(論辨) 등의 문장 형식으로 전해 내려온다.
고려의 여러 문헌에 남은 수필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는 이민구(李敏求)의 ≪동주집 東洲集≫에 실려 있는 〈독사수필 讀史隨筆〉이나 조성건(趙成乾)의 〈한거수필 閒居隨筆〉, 박지원(朴趾源)의 〈일신수필 馹迅隨筆〉 등이 특히 한국 수필의 새로운 발흥을 가져온 작품들이다.

☞ 특성

수필은 그저 담수(淡水)와 같은 심정으로 바라본 인생이나 자연을 자유로운 형식에 담은 산문이다. 인생을 통찰하고 달관하여 서정의 감미로움이 드러나기도 하고, 지성의 섬광이 번득이기도 한다. 그러기에 수필은 독자의 심경(心境)에 부딪치기도 하고 사색의 반려가 되기도 하여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하고, 철리(哲理)의 심오한 명상에 잠기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수필은 소설의 서사성(敍事性)을 침식하고 시의 서정성을 차용(借用)하기도 하면서, 무한한 제재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하여 인생의 향기와 삶의 성찰을 더하게 한다. 이러한 수필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수필은 무형식의 자유로운 산문이다. 그것은 수필이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산문문학이면서도 구성상의 제약이 없이 자유롭게 쓰여지는 산문임을 말한다. 소설은 인물·배경·구성 등에 의한 구조적 제약에 맞게 써야 하고, 희곡은 무대에서의 상연을 전제로 하여 그 형식에 맞추고 미적 구조에 의한 주제를 형상화해야 하지만, 수필은 그러한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쓸 수 있다.

물론 수필도 일기체·서간체·기행문 또는 담화체(談話體)로도 쓰여지고, 서사적 형식, 극적 형식 등 여러 가지 산문으로 쓰여지기도 하나,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구성상의 제약은 받지 않는다. 내용면에서도 인간이나 자연의 어느 한 가지만 다룰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토막토막 다룰 수도 있다.
수필을 ‘단상(斷想)’·‘편편상(片片想)’·‘수상(隨想)’이라고 이름하는 것도 수필의 이러한 자유로운 무형식성으로부터 연유한 말이다.

둘째, 수필은 개성적이며 고백적인 문학이다. 어떠한 문학 양식도 작가의 개성이 풍기지 않는 것은 없지만, 수필처럼 개성이 짙게 풍기고 노출되는 양식도 드물다. 시에서는 정서의 승화와 은유의 기법 속에 개성이 융합되고, 소설이나 희곡은 표현의 뒤에 개성의 향취와 분위기가 있지만, 수필은 작가의 적나라한 심적 나상(裸像)과 개성이나 취미·인생관 등이 그대로 나타나는 자조적(自照的)이며 고백적인 문학이다.
말하자면 수필은 작가 자신과 ‘동질동체(同質同體)’라고 할만큼 개성적이며 고백적인 양식이다. 그러나 그렇게 개성을 생생하게 나타내면서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수필의 특성이 있게 된다.

셋째, 수필은 제재가 다양한 문학이다. 어떤 문학 양식보다도 수필은 제재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인생이나 사회·역사·자연 등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느낀 것과 생각한 것은 무엇이나 다 자유자재로 서술할 수 있어서 그 제재의 선택에 구속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수필은 무엇이라도 다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이지만, 그러한 제재는 작가의 투철한 통찰력과 달관에 의해서 선택되어야 하고, 정서적·신비적 이미지를 거쳐 나오는 생생하고 독특한 것이어야 한다. 넷째, 수필은 해학과 기지(機智)와 비평정신의 문학이다. 수필은 상황의 단순한 기록이나 객관적 진리의 서술이 아니다.
알베레스(Albres, R. M.)가 말한 대로 “수필은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신비적인 이미지로 쓰여진 것”이어야 한다. 거기에는 서정의 감미로움과 입가에 스치는 미소와 벽을 뚫는 비평정신이 있어야 한다. 또한, 주름살을 펴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할 수 있는 해학이 있어야 하고, 놀라 기겁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기지가 있어야 하며, 얼음장처럼 냉철한 비평정신에 의한 오늘의 인식과 내일의 지표(指標)가 있어야 한다.
물론, 해학과 기지는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중요시하는 요소이며, 비평정신은 문학비평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특히 수필에서는 지적작용(知的作用)을 할 수 있는 비평정신이 그 밑받침이 되며, 시가 아니면서도 정서와 신비의 이미지를 그리게 하기 위해서 해학과 기지가 반짝여야 한다. 서정이 어린 지성의 섬광이 바로 수필의 특성인 것이다.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수필은 일정한 형식이 없고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어서 그 영역이 무한하게 확대된다. 시는 정서에 기반을 두고, 소설은 설화(說話)와 구성에 바탕을 두며, 희곡이 대화에 의한 문학인 데 반하여, 수필은 이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데에 그 독자적인 영역이 있다. 그러므로 수필은 전문화되지 않고 남은 창작적 변용을 용인하는 모든 산문문학적인 문장을 다 포괄하게 된다.

☞ 종류

수필은 무한한 제재와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몽테뉴형의 경수필(輕隨筆)과 베이컨형의 중수필(重隨筆)로 구분하는 것이 통례이다.

경수필은 신변·사색·서간·기행수필 등이며, 대개가 주관적·개인적·사색적인 경향을 띠고 있어서 ‘개인적 수필’이라고 한다.

중수필은 과학·철학·종교 등 주로 사회적인 관심과 객관적·경구적(警句的)인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사회적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 수필은 비교적 가벼운 형식으로 개성이 강하게 노출되고, 신변적인 것을 정서적·시적으로 표현하는 주관적·사색적 유형으로서, 이양하(李敭河)·이희승(李熙昇)·피천득(皮千得)·양주동(梁柱東) 등의 많은 수필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수필은 문장의 흐름이 가벼운 느낌을 주고, 표현이 개인적·주관적이며, ‘나’가 겉으로 드러나고, 개인적 감정이 정서로 짜여져 시적이며 신변적이다. 그러나 개인적 수필은 자칫 신변잡기나 지나친 자기 노출에 기울어질 염려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수필은 지성에 바탕을 두고 신비적·정서적인 이미지로 감싸 질 때, 철학성과 예술성을 아울러 갖춘 수필문학이 될 것이다.

사회적 수필은 철학적인 사고나 과학적인 사실, 사회나 문화에 대한 비평을 사색적으로 서술하고 단언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서, 학자·사상가·교육자 등에 의해 쓰여진다. 주로 사회적인 수필, 즉 김진섭(金晋燮)·김태길(金泰吉)·안병욱(安秉煜) 등의 수필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수필은 문장의 흐름이 무거운 느낌을 주고, 사회적이며, ‘나’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보편적인 논리와 이성으로 짜여져 있어 소논문과 흡사하며, 지적·사색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수필은 정서가 메마른 지식의 나열이나 설득과 경구의 과다로 흐르기 쉽다. 여기서 수필의 두 유형이 서로 견인, 조화하여 개인적·정서적 이미지와 객관적·지성적 논리를 함께 함으로써 ‘지성에 바탕을 둔 신비적·정서적 이미지에 의한 문학’이 되어야 한다.

☞ 사적 전개

한국의 수필은 크게 고전수필과 근대문학 형성 이후의 근대수필 그리고 1950년대 전후의 현대수필로 나뉘며, 고전수필은 다시 한문수필과 국문수필로 나누어볼 수 있다. 고려 이후의 방대한 한문학에서 수필적인 특성을 찾을 수 있고, 조선시대 문학에서 국·한문일기, 기행, 서간 등이 수필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주목된다. 근대문학 형성 이후에는 본격적인 수필의 정립과 성숙의 단계에 이른다.

☞ 현대수필의 양상

1950년대 이후 현대수필은 1930년대의 성숙된 수필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6·25전쟁 이후의 격동하는 시대에 상응하는 다양한 제재의 수용과 수필인의 확대는 시나 소설 이상으로 수필문학의 새로운 변모를 가져오게 한다. 수많은 잡지에 발표되는 문인·비문인들의 수필은 연 600∼700편이 넘어 이제는 수필의 팽배기를 맞고 있다. 그러면서 조지훈(趙芝薰)의 〈지조론 志操論〉과 같이 한 역사적 의미를 집약시킬 수 있는 작품도 적지 않으며, 소설 이상의 흥미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많은 독자에게 수필이 수용되고 있는 현상도 볼 수 있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의 김형석(金亨錫), 〈빛이 그리울 때〉의 김태길, 〈문학과 인생〉의 조연현(趙演鉉) 등과 같이 철학적인 사고나 통찰 그리고 인생의 관조를 박력 있는 필력으로 설득하는 경향의 사회적 수필과, 〈보리〉의 한흑구(韓黑鷗), 〈제사〉의 전숙희(田淑禧), 〈우화〉의 조경희(趙敬姬), 〈까치〉의 윤오영(尹五榮), 〈바보네 가게〉의 박연구(朴演求), 〈다리가 예쁜 여자〉의 윤재천(尹在天) 등과 같이 인생의 성찰과 자연의 몰입에 의한 심성을 서정화하는 개인적 수필의 경향으로 변모해 간다. 또한 김남조(金南祚)·신달자(愼達子)·문정희(文貞姬)·유안진(柳岸津) 등과 같이 여류 특유의 서정으로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을 응시하고 미화하며 찬미하는 여류수필도 한 새로운 경향으로 부각한다.
이러한 현대수필의 주요 경향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제재의 다양성과 수필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취미와 시각의 확산에 의해 수필의 제재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수필은 제재의 구애를 받지 않는 장르이나 현대수필은 더욱 제재의 다양성과 수필인의 전문성이 흩어져 수필은 수필가의 전유물이 아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 최신해(崔臣海)의 〈심야의 해바라기〉·〈문고판 인생〉·〈제삼의 신〉 등과 같이 의학적 산고와 낚시를 제재로 한 수상, 법정(法頂)의 〈무소유〉 같이 불자나 교역자의 종교적 사유, 이영도(李永道)의 〈머나먼 사념(思念)의 길목〉, 서정범(徐廷範)의 〈놓친 열차가 아름답다〉와 같이 인간의 심층 세계나 무속(巫俗)의 신비, 전규태(全圭泰)의 〈잉카와 마야 문명〉과 같이 새 풍물을 탐방한 이색적인 수필, 김우종(金宇鍾)의 〈우리들만의 우정〉과 같이 인생의 통찰, 구인환(丘仁煥)의 〈신서유견문〉·〈한번 사는 세상인데〉와 같이 이국 견문과 인생과 역사의 성찰과 비판 등 제재의 다양한 양상과 비전문인의 많은 수필창작이 특색을 이루고 있다.

둘째, 수필형식의 다양한 양상이나 무형식성이 그 특성으로 규정되어 있기는 하나 그 규제를 벗어나 소설의 서사성을 도입한 사건 서술이나 시의 삽입, 극적 상황의 설정, 복합구조 등 새롭고도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셋째, 수필문학성의 확산을 들 수 있다. 수필로 발표되는 수많은 작품은 수필의 문학적 영토를 확대하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수필의 문학성을 저하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수필문학의 정리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넷째, 수필인의 증대와 발표무대의 확대이다. 많은 문예지와 ≪한국수필≫(조경희)≪수필문학≫(강석호)≪현대수필≫(윤재천)≪수필공원≫·≪수필창작≫(오창익)·≪수필과 평론≫(이철호)·≪수필춘추≫(정동화) 등과 같은 수필 전문지, 그리고 수많은 잡지가 수필을 발표할 수 있는 확대된 무대이다. 또한, 문인이나 비문인이 모두 수필을 씀으로써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양식이 되고 있다.

다섯째로 수필문학의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수필문학의 이론적 연구와 그 자료의 정리로 수필문학의 새로운 장르적 정지와 체계화에 힘쓰고 있다. 대학에서의 수필론의 강의는 줄었으나 전문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 수필론의 강의와 그 창작적 실천과 수필의 생활화의 장이 넓어져 수필의 진작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으로 1년에 600∼700편의 수필이 발표되는바, 현대를 수필의 홍수시대라고 할 만하다. 따라서 현대수필은 다산(多産) 속에서의 문학 영토 확대의 공(功)과 더불어 질적인 저하 문제를 안은 채, 다음과 같은 과제를 지니고 있다.

즉, ① 장편수필의 궤도화, ② 수필문학의 문학성 향상, ③ 산업사회에서 수필의 생활화를 위해 수필도서관 건립, ④ 대학에서의 수필문학 강좌 설치의 확대, ⑤ 수필문학의 연구와 그 사적 정리를 위한 지원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제가 해결되면서 현대수필의 지향성과 그 좌표도 설정될 것이다.

(글/丘仁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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