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지용 / 향수

2011.11.14 08:32

김영교 조회 수:510 추천:26

21 세기에 남을 한국의 시인 10명 - 4.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추천작품: 향수, 유리창, 백록담, 고향, 바다, 춘설, 카페 프란스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버지��

짚벼개를 맘�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조선지광> 65호 1927년 3월 작)




*** 한때는 월북작가로 대학에서조차도 작품을 대하기 어려웠던 정지용 시인. 그가 어디에 살든 두고 온 고향집과 고향집 앞을 흐르던 실개천을 잊을 수 있을까? 늙은 부모를 고향집에 두고 온 모든 이의 마음의 고향인 이 시를 나지막이 읊조리는 순간 울컥하고 가슴을 치미는 슬픔이 있으리라. ***




고 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작자 소개

정지용 鄭芝溶 [1902.5.15~1950.9.25] 충북 옥천(沃川) 출생.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輔導聯盟)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 요점 정리

주제: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
제재:고향의 정경
성격:향토적,감각적,회고적,시각적--자유시,서정시
출전:<조선지광>(1927.3)
표현상 특징: * 시각적 이미지 중시 - 토속적이고 원초적인 이미지의 대상이 주로 등장됨
                * 참신하고 선명한 감각성
                * 인간의 근원적 정서의 표출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회고적 기법으로 처리
                * 서경과 서정의 교차를 통한 내적 리듬의 형성
                * 후렴구를 통한 의미의 강조(주제를 부각시킴) 및 형태상의 균형



■ 시의 구성 :

제 1 연 :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고향 마을을 둘러싼 자연적인 공간을 제시, 넓은 들판과 실개천의 대조

- 넓은 벌판과 그 벌판 동쪽 끝으로 흐르는 옛이야기가 얼켜 있는 실개천이 있는 곳이요, 실개천은 물장구치며 놀기도 하고, 고기잡이도 하던 곳이요, 그 곳은 또한 어린아이들이 잠자리와 메뚜기를 잡으려고 뛰어다닐 때, 얼룩백이 황소가 울음을 울며 지나던 곳이다. 시적 화자는 봄의 시골 모습인 벌판 실개천과 황소를 그리워하고 있다.

제 2 연 : 겨울밤 풍경과 아버지에 대한 회고

- 질화로의 재가 식어지면, 문틈으로 찬 바람소리가 들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던 방이다. 계절로 보면 겨울이다. 질화로가 있는 겨울은 여러 가지를 연상시켜 준다. 질화로에 밤을 구워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를 듣던 구수한 고향을 떠오르게 한다. 겨울에 즐기던 연날리기 불놀이 윷놀이 등을 그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며, 동시에 늙으신 아버지에 대한 관심과 걱정은 떨어져 있는 가족에 대한 애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제 3 연 : 시적 화자의 유년기의 직접적인 경험 회고

- 고향의 흙 속에서 자란 온정이 감도는 마음, 그리운 파란 하늘, 화살놀이를 하면서 뛰놀던 풀섶 등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다. 맑고 깨끗한 품성을 길러준 고향의 소박한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제 4 연 : 누이와 아내에 대한 회고

- 고향에 있는 어린 누이와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다. 시골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여인들의 모습이다. 궂은 일에 온갖 고생을 참고 지내던 조강지처의 모습과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함께 보낸 누이를 그리워하면서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도 그리워 하고 있다.


제 5 연 : 단란한 농가의 정경

- 하늘에 있는 별, 서리 까마귀 우짖고 지나가는 지붕과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 구수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은 가정의 단란함을 떠올리게 한다.



■ 어휘와 구절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 옛마을이 유서깊은 전설의 터전임을 암시

황소 : '온순,평화,한가로움'의 이미지

해설피 : 소리가 느릿하고 길며 약간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

금빛 게으른 울음 : 공감각적 표현(청각→시각)

해설피, 게으른 : 농촌의 한가함을 대변해 준다.

질화로, 짚벼개 : 전형적인 농가의 방안 환기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시간의 경과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활유(의인화), 바람이 분다(지나간다)

엷은 졸음 : 살풋 든 졸음을 감각화한 표현

아버지 : '자애'의 이미지

짚벼개 : '휴식'의 이미지

흙에서 자란 마음과 파란 하늘빛의 대조 :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그것과 조응

함부로 쏜 화살 : 上昇的 지향성과 함께 유년기의 순수

풀섶 : 풀이 많이 난 곳

이슬 : '청신함'의 이미지

함초롬 : 가지런하고 고운 모양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 역동적 심상  원관념 - 검은 귀밑머리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평범한

사철 발 벗은 아내 : 가난을 암시

누이 : '理想,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순결'의 이미지

아내 : '현실, 생활과 속세'의 이미지

성긴 별 : 드문드문 돋아난 별

서리 까마귀 : 가을 까마귀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와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의 대조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 황량하고 싸늘한 초겨울의 분위기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 집안의 따뜻한 분위기

초라한 지붕 : 가난을 암시



■ 이해와 감상

정지용의 초기시의 하나로서, 1930년대에 지니게 되는 이미지스트의 시풍과는 달리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을 주정적(主情的)으로 노래했다.

그는 충북 옥천(沃川)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도쿄에 유학하던 1923년 경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공간은 당시의 우리 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며,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그런 뜻에서 이 작품은 특정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서서 한국인이 지닌 향수의 보편적 영상으로 수용될 만하다.

작품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 부분마다 고향의 모습을 회상하는 연이 먼저 오고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독백이 이어짐으로써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반복의 수법은 무척 단순한 것이지만, 그 어떤 복잡한 기교보다도 절실하게 시인의 심경을 나타내 준다.

다섯 부분의 구성은 순탄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교묘하다. 첫째, 셋째, 다섯째 부분은 포근함과 아름다운 꿈이 서려 있는 고향의 모습이다. 둘째, 넷째 부분은 가난하고 고단한 삶의 모습이 담긴 고향을 보여 준다. 작품 전체는 결국 이 두 가지 빛깔로 채색된 고향의 모습이 차례로 엇갈리면서 전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두가 사랑스럽고 그리운 삶의 원천으로 절실하게 결합하는 데에 바로 시인이 노래하는 향수의 깊은 호소력이 있다.



■ 참고 자료

정지용의 시 세계와 문학사적 의의 :  정지용은 휘문 고보 시절 박팔양 등과 함께 습작지 <요람>을 발간하는 등 일찍부터 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1920년대 중반부터 모더니즘 풍의 시를 써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 무렵에 발표한 작품으로는 '향수'와 식민지 청년의 비애를 그린 '카페 프랑스'같은 작품이 주목된다. 그러나 정작 정지용의 시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1930년대 이후이다.

1930년대 첫머리부터 그는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여, 김영랑과 함께 순수 서정시의 개척에 힘을 썼다. 그러나 김영랑이 언어의 조탁과 시의 음악성을 고조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인 데 비해, 정지용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표현의 방법을 개척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의 장기로 여겨지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의 구축,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 구사가 바로 그것이거니와, 이를 통해 그는 한국 현대시의 초석을 놓은 시인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그는 사상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보여 주는데, 한때는 카톨릭 신앙에 기초한 신앙시를 쓰기도 했고, 1930년대 말에는 동양적 은일(隱逸)사상에 기대어 '장수산', '백록담' 같은 시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시적 변모를 보여 주면서도 그의 시는 줄곧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1930년대 말부터 <문장>지의 심사 위원으로 있으면서 정두진, 박목월, 조지훈, 김한직, 박남수 등 많은 시인들을 문단에 소개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6 25를 전후하여 납북되어 현재 생사를 모른다. 한때 월북 시인으로 분류되어 문학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으나 1988년에 해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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