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갈대 / 신경림

2011.11.18 12:56

김영교 조회 수:926 추천:24

21 세기에 남을 한국의 시인 10명 - 8. 신경림(申庚林, 1936- )
    
추천 작품: 농무, 목계장터, 파장, 갈대

<파장(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깍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수 기타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 어구풀이

못난 놈들 : 서글픔이 깔린 친근감과 동료애를 느끼게 하는 표현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 시적 화자의 농민에 대한 진한 애정과 비극적 인식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 농민들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제유적으로 표현.
서울이 그리워지나 : 농촌을 떠나고자 하는 의지라기보다는 농촌 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자탄의 표현임.
섰다라도 벌일까 / 색시집에라도 갈까 : 자포자기의 심정
섰다 : 화투장 2장의 끗수로 겨루는 노름

8행 ~ 10행 : 울적하고 서글퍼진 마음을 달래보려 귀가를 뒤로 미루는 모습들. 삶에 대한 절망감과 자포자기의 심정을 읽어볼 수 있는 부분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 ①가난하고 소박한 농민들의 장바구니를 압축적으로 표현(삶의 애환). ②장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과 애환을 한 바탕 마음껏 토설하고자 장터를 찾는다는 화자의 생각을 담은 표현이기도 함.

절뚝이는 파장 : 농촌의 절망적 상황(술에 취해 절뚝임 + 비애감으로 가득찬 파장의 모습) ①농촌 현실의 불구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부분. ②실제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나타내면서, 삶의 무게와 어려움에 절뚝이는 모습을 동시에 담은 중의적 표현으로 볼 수 있음. ③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나오는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는 표현과 일맥상통.



■ 요점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향토적, 서정적, 비유적, 서사적
전개 : 개장 → 파장 (흥겨운 만남 → 울적함)
표현 : ① 비속어의 직설적 표현
         ② 4음보 중심의 경쾌하고 투박한 리듬
         ③ 적절한 서사적 제재의 선택  
구성 : 1 ~ 4행 - 농민들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애정
         5 ~ 10행 : 농민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탄식
         11 ~ 13행 : 파장 이후의 귀가길 묘사
제재 : 황폐화되어 가는 농촌 현실. 파장(罷場)
주제 : 황폐화되어 가는 농촌 현실을 살아가는 농민들의 애환과 인고(忍苦)의 생활 모습
출전 : <창작과 비평>(1970)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어느 시골 장터에서 만난 농민들의 애환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진솔하고 토속적인 묘사로 압축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이야기를 지니는 시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향토적인 정취를 서정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하나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야기의 전개상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일상적인 언어의 적절한 구사를 통하여 민요적 리듬 의식을 느끼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시골의 장터는 항상 흥겹다. 그리고 이 장터는 농민들의 토론의 장(場)이자 정보의 교환처(交換處)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둘러앉거나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농사 짖기의 어려움이나 빚뿐인 농촌의 얘기에는 모두 서울로 뜨고 싶은 마음만이 앞선다. 이런 울적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자포자기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파장 무렵의 장에서 이것저것 집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 가지고, 달이 환한 마찻길로 접어들어서 무거운 발걸음 다시 집으로 향하게 된다.

초라한 시골 장터의 사실적 묘사를 통하여 농촌 생활의 어려움과 이로 인하여 날로 증가하는 이농(離農)의 문제를 간명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화자의 태도를 기준으로 보면 이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 부분은 1-4행으로 농민들이 그들의 공동체적 삶에 대해 갖는 애정을 보여 준다. '참외, 선술집, 막걸리' 등에서 '모두들 친구 같은 얼굴들'이 되는 그들에게서 참으로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못난 놈들'은 자기 비하(自己卑下)가 아니라 친함에서 오는 동류애(同類愛)이 표현이다.

중간 부분은 5-9행으로 농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표출하고 있다. '가뭄, 조합 빚' 등의 현실적 문제로 상경(上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이농(離農)의 심각성을 유추할 수 있다. '떠남'의 의식은 기존의 '못난 놈들'의 인정이 넘치는 농촌의 삶을 폐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회는 인정이 없고 삭막하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궁핍함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촌의 경제적 황폐화 현상은 농민들에게 노름과 토색(討索)질 같은 자포자기의 절망을 몰아왔다.

이 시는 붙박이 의식과 일탈 의식이 함께 드러난다. 여기에서 일탈 의식은 근본적인 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붙박이 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붙박이 의식을 침해하는 현실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떠남'의 의식은 기존의 삶을 폐기하는 것이다. 화자에게 기존의 삶이란 인정이 넘치는 농촌을 토대로 한 것이다. 못난 놈들의 어울림, 친구 같은 사람들과의 얘기가 있는 세상이 바로 농촌이다. 장터에 나서면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만남을 무겁게 하는 것은 농촌의 궁핍 현상이다. 가뭄과 빚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이 현실에서 화자는 서울을 그리워한다. 물론 서울은 도시의 대표이다. 그 도회는 인정은 없지만 적어도 궁핍함을 주지 않는다. 그런 도시로의 일탈 의식은 경제 문제가 기본적 삶을 얼마나 제약했는가를 반영한다.

인간들의 다정한 교류와 농촌의 정서를 포기해야할 정도로 심각하게 된 농촌 문제는 농민들에게 절망을 몰아왔다. 그 절망의 표출 방식은 자포자기의 형식으로 나타는데, 노름과 토색질이다. 이 현상을 삶의 포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농촌은 기본적 삶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농민에게 절망감과 자포자기의 심정을 가지게 했음을 엿볼 수 있다. 고무신과 조기를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삶의 애환을 보고도 남는다.

이 절망적 상황을 시인은 '절뚝이는' 으로 표현하여 농촌 현실의 불구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 집으로 향하는 광경은 울적하기 짝이 없다. 이 울적한 광경이 바로 오늘의 농촌과 농민의 모습이다.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요점 정리

성격: 감각적, 묘사적, 상징적, 주지적 ,숙���  
특징: 신경림의 초기시로서 삶의 슬픔에 대한 존재론적 각성을 노래함
출전: <문학예술>, 1956.2
주제: 삶의 근원적인 슬픔에 대한 인식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작가의 초기 경향을 대표하는 시로서, 인간 존재는 원래 비극적임을 노래한 서정적인 주지시이다.

여기서 갈대의 울음은 단순한 자연 현상의 울음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불안 의식, 또는 가난한 자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제재로 볼 수 있다.

주지적 수법으로 감각적 묘사가 두드러지며, 일상적인 쉬운 언어로써 인간이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것이며, 또한 사회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존재 문제임을 보이고 있다.

신경림의 초기 작품의 근원은 슬픔이다. 그것이 이 작품에서는 울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울음은 곧, 깨달음의 중요한 과정이고 존재를 인식시켜 준 매개이다.

1연은 갈대의 내면 세계를 단지 묘사한 것으로 ‘갈대’는 어떠한 가치도 지니지 못한 채 단지 존재할 뿐이었다.

2연에서는 ‘갈대’는 어느 날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그것을 시인은 시각적인 외면 묘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3연에서 ‘갈대’는 자기를 흔든 것은 ‘바람’, ‘달빛’ 등의 외재적 조건이 아닌 스스로의 ‘울음’인 내재적 조건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사실이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제 삶이 제 몸을 흔드는 그런 울음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

울음은 곧, 삶의 의미라는 것을 시인은 4연에서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갈대가 이 시의 화자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시적 화자는 ‘조용히’, ‘속으로’ 울고 있는 사람이다. 겉으로 크게 우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여 울고 있다. 자기 스스로 느끼고 움직이는 그런 모습이다. 이것을 ‘내면화의 울음’, ‘정적 울음’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다.

1970년대 이후의 신경림을 보았던 사람에게는 이 시가 퍽 낯설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1956년에 이 시로 등단한 이후 10여 년을 절필(絶筆)하고 살았다. 침묵 끝에 발표한 처녀 시집 ‘농무’ 이후 줄곧 거기에서 보여 준 시적 경향을 유지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고향 노래만을 부르고 있는 토속적인 고향의 노래꾼이다. 그에게 있어 고향은 막연하고 평면적인 농촌 현실이 아니라 한(恨), 울분, 고뇌로 점철된 곳을 의미한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서 시인은 고급의 예술성보다는 이념의 우위를 드러냈고, 이해하기 쉬운 평범한 토속어와 민요조의 설핏한 가락들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엮어 내는 것이다.

농촌과 농민이라는 전통의 정서에 기대어 사실성을 추구하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그의 열정에 우리는 또 한 번 주목해야 할 것이다.



■ 작가소개


신경림(申庚林, 1936- )은 충청북도 중원에서 태어났다. 1960년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55∼1956년 이한직의 추천을 받아 《문학예술》에 시 <낮달> <갈대> <석상>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건강이 나빠 고향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현대문학사, 희문출판사, 동화출판사 등에서 편집일을 맡았다. 한때 절필하기도 하였으나 1965년부터 다시 시를 창작하였다. <원격지> (동국시집, 1970), <산읍기행> (월간다리, 1972), <시제(詩祭)> (월간중앙, 1972) 등을 발표하였다.

이때부터 초기 시에서 두드러진 관념적인 세계를 벗어나 막연하고 정체된 농촌이 아니라 핍박받는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주로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농민의 한(恨)과 울분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론가 백낙청은 1973년 발표한 시집 《농무》의 발문에서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 마땅한 문학’이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의의가 있다고 하였다. 이후부터 그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1973년 제1회 만해문학상, 1981년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에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우리들의 북》(1988), 《길》(1990) 등이 있고, 평론에 《농촌현실과 농민문학》(1972),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2), 《역사와 현실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시》(1984), 《민요기행》(1985), 《우리 시의 이해》(1986) 등이 있다.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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