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이제는 / 김영교

2011.09.05 04:29

김영교 조회 수:298 추천:45

텃밭, 이제는

-<처음답다>에 부처 (축하 메시지)

우리는

세상 재미에 취하여

소음에 갇혀

마음 끄고 눈 닫아

의미 몰라 헤맨 여정 속에 있었네

  

우리는

저마다의 원대한 꿈을 안고

고통의 벼랑, 깊은 상처의 강을 건너

사우스 베이 광야 한 구석

글사랑에 목마른 씨앗으로 모였네

  

하늘이 드높은 10월 어느 날

다가온 한 가닥 시치유의 맑은 바람은

창작의 새벽을 활짝 열어주었네.

  

글사랑 작은 농부들 텃밭 일구어

제각기 다른 첨예한 쟁기를 들고

의식을 심고 습작의 물을 주며

신뢰의 동아리 문학인의 발돋음으로

시 (詩)가 움트고 수필가지 뻗어

건조한 이민 마당에 기쁨의 잎새 높푸르네

  

지금 텃밭은

걱정의 잡초 사라지고

최선을 다하는 흙 알갱이는 낮게 부서져

쓰고 읽고 많이 생각하는 텃밭

햇빛 쏟아지는 글 정원 주인농부들 되었네

  

줄기차게 솟는 의욕과 화평의 꽃은

인내 끝에 피어나

향기 높아 주위를 아름답게 감동 주는

탐스런 꽃, 청초한 꽃들 잔치 벌이는

  

이제 텃밭은

평화의 텃밭, 다 다른 색깔과 향기 높은

문학꽃 피어나는 옥토가 되었네













우리들의 이야기



-장미꽃 바구니에 담아






리돈도 비치 <케로스>

뒤풀이 그 자리에 나타난

장미꽃 바구니 하나는

콩콩 뛰는 그녀의 빨강 심장

  

뜨겁게 자지라드는 색깔에 묻혀

보일 듯 말듯 작은 미소 찍어

저 강열한 흡인력의 눈빛에 정면대면

  

전혀 예기치 않은 몸매무새

큰 침묵을 삼킨 후

토해내는 글 다발들, 알맞는 시간에

바구니 가득 글 향기 가슴에 품어

뜨겁게 발효한다

  

주차장엔 어울리지 않는 비

옷이 젖어

그리움에 젖어

불숙 손 잡아주는 따스한 체온

글사랑 바구니 가득 주르륵

  

활자낚시는 나를 건지고

내일을 건지고

내일 안에 있는 시를 건지고

  

장미꽃 바구니 희망 바구니

세상을 건지는 햇빛 바구니

글 꽃 눈부시다.

------------------------------



잃어버린 시 / 김영교






언제가 부터 실향민이 되어버렸네

지도에도

사이트에도

찾을 수 없던 잃어버린 시

'고향바다'

  

'YTN'이 던진 지구바다 낚시에

대어 '고향바다'가 잡혔다

  

가출한 미아(迷兒) 시가 돌아왔다

귀가한 '고향바다'에 안겨

한참을 그리도 오래 동안

젖가슴을

송두리체 더듬고 있었다.

  

  

  

  

고향바다 / 김영교

  

  

하늘이 높푸른 오늘 같은 날

고향바다 떠오른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내 안에 있는 다도해

잠을 자도 들리는

내 안에 있는 남해 파도소리

뒤 돌아서면 따라와 손잡는

장승포 흰 모랫벌

  

그 물빛, 그 파도,

그 모랫벌처럼 깨끗이

나를 씻고 키워

세상에 내 보내 준 어머니

  

밤마다 찾아와

그리움의 몸짓으로

철썩철썩 깨워

세상 먼지 털어준다

  

낯선 별빛 아래

늘 빈 가슴

하늘 저 멀리 출렁거려도

마르지 않는 향수


어느덧

고향바다 앞에

바람 먹으며 서 있다.

============================

수필



잊혀지지 않는 말 한마디


오리농장을 하는 친구가 있다. 무척 사랑하던 집오리가 어느 날 야생오리 떼를 따라 집을 나갔다.

자식처럼 키운 가출한 오리 두 마리가 얼만큼 시일이 지나 네 마리의 야생오리를 거느리고 금의환향 하자

돌아온 탕자를 반긴 친구의 기쁨을 들었다.

야생 먹이 사냥에 훈련이 안된 그 오리는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었을까.

  

뒤뚱거리며 농장을 안내하는 풍경이 너무 평화스러워 보이더라고 친구는 대견해 했다.

주인과 가축의 관계 이상이었다.

사랑의 보금자리를 벗어날 수 가 없었던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옆집에 애답지 않은 딸애를 가진 가족이 이사를 왔다.

물들까 염려하며 그 애와 못 놀도록 우리 애들을 격리시키려 했다.

이 소문 나쁜 아이는 어쩌다가 우리집 강아지와 친해지더니 주일이면 어김없이 우릴 따라나선다.

시간이 가면서 변화되어 가더니 노랗게 물감 드린 머리는 자취를 감추고 짧고 짧은 옷차림뿐만 아니라

말씨와 걸음걸이에까지 그 변화의 범위를 넓혀 갔다.

물론 담배도 끊었다고 들었다.

염불 같은 이상한 음악도 더 이상 담 넘어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많은 것을 느끼면서 나의 편견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단 둘이 살던 엄마가 재혼을 하자 딸아이는 상처를 입고 반항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숙제도 도와주고 먹을 것도 가져다주며 동생처럼 돌봐준 우리 집 두 녀석이 대견스러웠다.

  

아무도 야생오리의 입성을 상상 못했고 이웃 애의 변화도 예측 밖이었다.

물든 것은 바로 이웃 아이였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랑이란 바구니 안에서는.

  

"엄마, 엄마는 왜 우리가 그애 나쁜 물든다고 생각해요? 그애가 우리 좋은 물이 들면 되지..."

큰 녀석의 어릴적 대화 한 마디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소식이 끊긴 채 떠나간 그 아이, 지금쯤 어른이 되어 어떻게 변했을까?

  

그애를 돌보아주던 그 때의 우리집 큰애는

주님의 아들로 세움을 받고 파사디나에 있는 원보이스 교회를 개척하고

문제 가정을 상담하며 신앙의 성장을 돕는 목회자가 되어

한 인간 한 영혼 구원에 헌신하고 있다.

할렐루야!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6
어제:
26
전체:
647,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