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숲으로/김한주

2011.10.20 07:02

김영교 조회 수:177 추천:33

어쩌다 내 안에 흘러온 그대여

내 마음의 파장 따라

거센 물결로 접혀오는 그대의 이맛살

갈수록 나를 닮는 그대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아득한 어둠 뿐

맑은 심성과 향기로운 눈짓의 그대 속에

작살로 던져지는 내 갈쿠리를 피해

떠나거라

아직은 젖지 않은 그대의 혼을 데리고




늦도록 내 안에서 살다가 떠난 자들

어둠이 사슬 발목을 매달고

하늘 너머 땅끝까지 헤매는구나

떠도는 나의 살들이여




그러므로 떠나거라 이쯤에서

제 몸 바꿔 황갈색 아름다움 하나

세상에 떨어뜨리는 나뭇잎처럼

내게 길들여진 침침한 색깔 벗어던지고

그 길로 곧장 가거라

무구한 빛의 숲

빛살마저 투명해 함부로 볼 수 없는

그대의 옛집으로 돌아가라




- 김한주(1954 -   ) ‘빛의 숲으로’ 전문.




가을나무가 이파리들을 떠나보내고 있는 장면을 떠올린다. 이파리는 찬란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을햇살이 가득한 숲으로 떠나고 있다. 그곳은 나무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났던 옛집이다. 이제 또 다른 나무를 키우는 거름이 되고 집이 돼줄 것이다. 영원히 곁에 있어줄 것 같던 사람들, 지위, 명예, 젊음을 떠나보낼 때 괴로워하는 우리 인간들과는 사뭇 다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그러므로 떠나거라” 명령하는 모습이 장엄하다.




*** 김동찬,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년 10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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