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흐른다/ 임 윤

2011.11.02 01:44

김영교 조회 수:346 추천:28

은행나무는 흐른다



                    만추를 털어낸 샛노란 수맥의 발자국


                    시위 당기던 해도 저물어

                    속눈썹으로 날아드는 시간의 화살

                    눈동자에서 파르르 떠는 저녁



                    선을 긋고 떠난 바람의 필체인가

                    우듬지에 보푸라기 이는 비행운

                    손차양에 금세 번지는 노을



                    가을의 촉수는 퇴적된 계절에서 움터

                    무넘깃둑에 쏟아지는 웃음들



                    천 년은 너무나 짧아

                    차라리 돌이 되고야 말

                    화르르 날아오르는 노랑나비떼



이 시는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대표 양문규 시인) 주최 은행나무 시 공모에서 최우수 작품상(정윤천 시인과 공동 수상)을 받은 임윤 시인의 작품이다. 지난 주말 천태산 은행나무 아래에서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詩祭)’가 열려 시상식을 함께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모인 시인과 문학애호가들 등산객 등이 동참했으며, KBS청주방송국의 ‘찾아가는 문화현장’ 공개방송도 있었다. 올해로 3회째인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는 영국사 은행나무를 문화 재창조 공간으로 살려내고, 나무가 설파하는 고귀한 자연과 생명, 평화의 정신을 보존하고 이어가고자 시작되었다.


올해는 특히 전국 326명의 시인이 참여하여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걸개 시화전’을 9월 5일부터 오는 12월 3일까지 열고, 올해 문화재청 생생사업으로 사화집「노랑말로 말한다」를 발간했다. 그 은행나무가 ‘노랑나비떼’를 날린 세월이 천 년이니 천삼백 년이니 설왕설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은행나무가 내는 멀고 넓고 깊은 길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생애를 살다가는 인간의 얕은 호기심에 불과하다. 유장한 세월동안 만추가 되면 노랑말로 가을을 털어내곤 하지만 아직 영국사 은행나무의 노랑말은 조금 서툴러 보였다. 노랑말이 유창해지려면 ‘손차양에 금세 번지는 노을이’ 몇 날 더 물들어야겠고 시간의 화살이 눈동자에서 몇 번은 더 파르르 떨어야겠다.


그러고서야 ‘가을의 촉수는 퇴적된 계절에서 움터 무넘깃둑에 쏟아지는 웃음들’을 날릴 것이다. 화르르 ‘노랑나비떼’로 날아오를 것이다. 천년 수행 결가부좌는 너무나 짧아 차라리 득도의 화석이 되고야 말겠다. 내 경우 노란색은 상대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색상은 아닌데 '이 노랑나비떼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본디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식물 중 가장 오래된 식물이고, 나무를 심어 열매를 맺기까지는 보통 수십 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천태산의 이 은행나무는 전쟁이나 환란 등 나라에 큰일이 터질 것을 미리 알리는 울음소리를 내는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하니 확실히 도가 터긴 턴 나무다.  


권순진
c/o 임수자부고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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