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별헤는 밤 / 서정주

2011.11.14 08:36

김영교 조회 수:966 추천:24

21 세기에 남을 한국의 시인 10명 - 6.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윤동주는 조부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독교를 믿어온 모태신앙의 소유자다. 그러나 윤동주는 연희전문 시절 극심한 종교적 회의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종교적 회의에 시달리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순결한 양심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기독교는 내세주의, 또는 초월주의적인 종교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내세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 근본 교리이다. 기독교의 이러한 교리는 자칫하면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고 내세의 구원만을 추구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순결한 정신의 소유자로서 윤동주는 기독교의 그러한 초월주의를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시 <팔복>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패로디하여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를 여덟번이나 반복한 뒤 그들에게는 영원한 슬픔만이 있을 뿐이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려 성경의 내용을 뒤집고 있다. 지상적인 슬픔을 참고 인내하는 것만으로 영생이 보장되고 천국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신이 인간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에 창조한 이유를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는 <태초의 아침>에서도 보이는데 윤동주는 기독교의 초월주의적 성격에 대한 회의를 통해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진 이유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악과 대결하여 지상 세계를 낙원으로 만들라는 신의 예정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추천작품: 서시, 별 헤는 밤, 십자가,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



●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서시>는 윤동주 시집 전체를 대표하는 시로 초월적인 신앙을 극복하고 운명에 대한 긍정과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을 보여주는 시이다. 첫연에는 삶의 도덕적 순결성을 지향하는 윤동주의 삶의 지표와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구절은 그의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과 도덕적 순결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은 현실 속에서의 삶 자체를 괴로운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란 나무 잎새를 흔들 정도의 아주 작은 바람은 의미한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잎새가 흔들리 듯 시인은 현실의 작은 풍파에도 괴로워 할 정도로 나약했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들은 초월적인 신앙에 대한 반성을 통해 운명에 대한 인식과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윤동주의 의식 변화를 보여준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것은 초월적인 천상적 세계를 노래하던 마음으로 이제는 죽어가는 모든 것, 즉 운명을 타고난 지상적인 모든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말이며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구절은 동시에 그것을 하늘이 부여한 운명으로 알고 실천해 나가겠다는 소명의식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과거시제에서 현재시제로 이동하면서 과거의 초월적인 신앙을 반성하고 현실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금까지 초월적인 차원에서 추구되던 별은 윤리의식의 거울이 되며 하늘을 노래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지상적인 삶과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역사적 소명감으로 발전하고 있다. 천상적인 세계 속에만 존재하던 별과 하늘은 지상적인 별과 하늘이 될 수 있으며 그는 하늘의 세계를 지상에 이룩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스 쟘"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1941년 11월 5일)


<별 헤는 밤>은 식민지 시대 창씨개명을 소재로 다룬 유일한 작품이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위해 평소동주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뜻을 가지고 동경유학을 결심하고 창씨개명을 했지만 강제로 이름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현실을 생각할 때 그 수치심과 모욕감은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창씨개명을 하고 유학 서류를 접수한 다음 윤동주는 자주 다니던 언덕에 올라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옛날에는 저 별 아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똑같은 별 아래서 모든 것, 특히 자신의 존재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자마저 빼앗기고 말았다는 모욕감에 젖어 이 시를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고향> 처럼 <별 헤는 밤>에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시대적인 어둠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식민지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으로서의 이상적인 세계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시대적인 상황은 "나의 별에도 봄이오면"이라는 구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죽음의 계절인 겨울로 설정되어 있다. 겨울이 모든 식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듯이 식민지 상황은 나의 별의 모든 것을 박탈하고 죽음의 세계로 화하게 만든다. 겨울로 인해 상실된 것들은 추억, 사랑, 쓸쓸함, 시, 어머니, 어릴 적 동무들, 그리고 이 시에서 여러번 반복되고 있는 이름자이다. 이들은 상실된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계열체에 속하며 그 기능적 의미를 같이 한다.
별은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별은 옛날처럼 빛나고 있지만 그 별 아래 존재했던 밝고 자유스러운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지상의 "나의 별"과 하늘의 "별",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의 기본적인 대립이 성립되며 과거의 삶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당위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밝음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의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것의 상실은 수치와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식민지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삶은 화자로 하여금 별을 매개로 상실된 것들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고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는 행위로 나가게 한다. 여기서 화자가 흙으로 썼다가 덮어버린 이름은 창씨개명으로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이름으로 보인다. 그것은 "내 이름자를 써 보고", "이름자 묻힌 언덕", "부끄러운 이름" 등 이름에 대한 특별한 반복과 마지막 연의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는 비유를 통해서 확인된다. 이 비유에서 "이름자 묻힌 언덕"과 "무덤", "흙으로 덮어버린" 이름자와 무덤 속에 묻혀 있는 주검은 등가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비유는 이름의 죽음, 즉 우리 말 이름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치욕의 이 시대가 무덤과 같은 죽음의 시대임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 구절이 창씨개명을 의미한다는 것은 그 외에도 이름을 빼앗긴 삶을 벌레와 같은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름이란 존재의 상징이다. 이름의 상실은 인간으로서의 죽음, 곧 동물적인 수치스러운 삶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동경 유학 직전에 씌어진 이 시는 윤동주의 동경유학을 위한 창씨개명과 그 수치감을 보여주기도 하며 전체적으로 강압적인 식민지 현실과 그로 인해 빼앗긴 자유스러운 공간으로서의 고향의 대립을 통해 되찾아야 할 이상적인 곳으로서의 고향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특히 마지막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죽었던 풀들이 되살아나듯이 국권이 회복될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이름자도 자랑스럽게 되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와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
윤동주 시에서 고향은 식민지 현실과 대립되는 상실된 민족적 터전과 그곳에서의 자유스러운 삶을 의미한다. 그것은 현재는 상실되었지만 과거에는 존재했고 앞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이상적인 곳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윤동주 자신의 고향으로서의 의미보다는 빼앗긴 조국을 의미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국권회복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18 용선식  '하늘, 가을, 별, 청춘, 추억, 사랑, 동경, 시, 어머니, 라이너 마리아 릴케, 소학교 때 아이들, 흙, 벌레, 슬픔, 부끄러움, 봄, 겨울, 무덤, 잔디, 내 이름자, 언덕, 자랑, 풀' 이들 중 어느 한 단어만 가지고 글을 쓰라고 해도 누구나 열 마디 이상의 글은 쓸 수 있으리라.
누구나의 삶 속에 여러가지 사연과 함께 들어 있는 것들을 시인은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
어찌 이 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연말에 좋은 친구들과 분위기 있는 곳에서 이 시를 외어 들려준다면 이보다 멋진 선물이 없을 것 같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4
전체:
647,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