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서는 안될 사람, 오면 행복할 사람'

2007.09.18 17:46

김영교 조회 수:327 추천:45

이중희 선배님: 수정할 곳 몇곳을 지적합니다. (1) 책 제목을 오기: '미국 와서는 안된사람...' ------> '....안될 사람....' (2) 넌픽션----> 논픽션 (설명: Non fiction 의 Non 을, 이 단어를 쓸때는 한글로는 넌 이라고 표기 안하고 논 이라고 하는게 관례 입니다. 그런데 Non-sense 를 한글로 표기할때는 논센스 라고는 안하고 넌센스라고 표기 하는데 그 차이는 모르나, 어쨌던 관례입니다) (3)회고력----> 회고록 (설명: 잘 아시다 시피 회고록은 한자로는 回顧錄인데, 이런 '회고력' 이라는 과오는 한문 상용을 폐지한 데서 비롯 됩니다. 머지 않아 젊은 세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상용하는 어휘의 근원을 몰라서 잘 못 사용해도 그 자체를 알지 못하는 세대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말 단어의 거의가 한자어로 구성 됐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한문 부활을 철저히 주장하며 초등학교에서 고교까지의 12년간에 최소 5천자 한자 사용을 주장하는데, 이러다가는 우리말이 실종될가 앞날이 심히 걱정이 됩니다) (4) 낱말 간의 띄기를 제가 아는 상식으로 멋대로 수정합니다. 아래에, 상술한 과오를 수정한 원문을 보냅니다. 이 카피를 권중건회장과 차학송 총무에게도 보냅니다.by 이완규 독후감: '미국 와서는 안될 사람, 오면 행복할 사람' (이중희 지음) 이중희 선생을 알게 된 것은 그가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입상되고 나서였다. 문단 선배의 소개로 만나게 된 선생은, 고희가 훨씬 넘은 나이에도 소년 같은 면모로 말씨가 부드럽고 예의 바르셨다. 그 잔잔한 겉모습에 숨은 선생의 열정을 알게 된 것은 차츰 만나면서 부터 였다. 소설이 입상되기 전해, 이미 논픽션이 당선되었던 선생은 소설과 논픽션의 원고를 나에게 읽어보라고 주셨다. 집에 돌아와 펼쳐 본 선생의 글 들은 막힘 없이 잘 읽어 내려가게 되는 시원함이 있었다. 그리고 논픽션을 읽으며 무일푼으로 미국에 와 미국사회 안에서 알아주는 공학자가 된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이 책 '미국 와서는 안될사람, 오면 행복할 사람' 이 소설의 형태가 될 것을 기대하도 있다가 선생의 회고록이 된 것에 문학가인 내 입장에선 좀 아쉬움이 일었다. 소재를 잘 살리면 훌륭한 소설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읽어 내려가면서, 꾸밈없는 진실을 그대로 썼기에 오히려 호소력 있는 책이 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독자를 감동시키기엔 소설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 대한민국 전체가 가난하던 시대에 소년시절을 보내면서 근면과 성실로 살아온 선생의 이야기는 요즘처럼 물질이 넘쳐나는 시대에 안일하게 성장하는 고국과 이민사회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이민 1세들은 좀처럼 미국 주류사회에 합류하기 힘들고, 영어가 자유로운 1.5세나 2세 들은 오히려 한인 이민사회에 합류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선생은 이민 1세로서 미 주류사회의 중요인사가 되는데 성공 하였으며, 한인사회와 교류하는 것에도 열정적이시다.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가야할 방향을 선생은 몸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특허를 낸 선생의 환경공학 연구는 각종 공해로 훼손되어 가는 이시대에 상당히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인간 생명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선생은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시다. 위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내부에 생기는 염산인 것과, 하수 파이프 내에 생기는 황산으로 파이프가 부식하는 것을 비교하여, 선생은 앞으로도 위암을 예방할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어 한다. 장기간의 연구와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을 알지만 만약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인류를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다. 아무쪼록 선생의 연구가 성공하여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병고로 부터 구해주시길 바란다. 공학도인 선생은 마라톤과 바이올린 연주에도 열정적이시다. 중국 우주 공학과 로케트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쉐썬' 이라는 고령의 과학자는 '사회라는 것은 일종의 시스템 공학으로 물질 문명 뿐 아니라 정신문명, 정치문명도 필요하다' 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할 때 과학적 지식이 있다고 과학자가 되는것은 아니라고 한다. 과학자도 문화예술의 수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도 어릴때 이과 수업을 받으면서 음악과 미술을 배운것이 과학연구의 새로운 사상을 여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과학과 문화예술의 결합이었다. 과학자들도 음악, 미술 등의 예술을 공부해야 한다는 첸쉐썬의 주장에 따르면 이중희 선생은 과학자로서 바람직한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중희 선생은 이미 문학가로 등단하였으며, 바이올린 연주자에다, 마라톤도 하시니 그건 예술적 자질이 그의 과학사상과 결합하여 분명 이 시대 과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아무쪼록 건강하시어 고국과 우리 이민사회의 귀감과 빛으로 오래오래 계셔주시길 부탁드린다.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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