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아름답다 김영교/시인

2007.02.15 13:19

김영교 조회 수:348 추천:39

프로는 아름답다 김영교/시인 사람들은 때밀이 그녀를 백언니라 부른다. 나도 그렇게 부른다. 경상도 억양에 인간미 물씬 풍기는 그녀는 금년 3월 생일을 맞아 22년의 때밀이 직업을 내려놓는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쉽지 않은 결단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를 다시 처다보았다. 84년 이민을 오자마자 음식하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8백불짜리 식당 보조요리사의 일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그 다음 해 85년부터 3천불짜리 때밀이 직장으로 옮겨 22년을 하루같이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22년이란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날아가 늙음이란 나무에 꽂히는 화살이었다. 어제 공항에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인데 하늘 한번 처다 보면 봄, 그 다음 처다 보면 가을, 뒤돌아보면 힘은 들었지만 돈 벌고 요긴한데 돈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고백하는 솔직성이 돋보였다. 9순의 노모와 이혼녀 딸, 그리고 스스로는 과부, 여인천하를 이끌고 이민의 삶을 개척 한 여장부가장, 좌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정면 대결한 용기, 바로 이민 1세의 장한 모습인 것이다. 허리를 다쳐 운신을 못할 때 한 친구는 나를 백언니한데 데리고 가 주었다. 그녀의 손은 약손인지 맛사지 지압을 받고 허리가 많이 호전되었고 그 후 화분을 들다가 삐꺽한 허리 때문에 어느 듯 그녀의 단골이 되어있었다. 백언니는 같은 고향사람을 만나 반갑다며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정다운 갱상도 사투리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할 때면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직접 듣는 듯 향수에 젖어들기도 했다. 이런 저런 입담 좋은 이야기는 물바가지 끼얹을 때도 계속 이어져 그녀의 앞가슴만큼 풍만한 이바구창고는 늘 들어도 새것처럼 재미있고 드라마틱 이야기로 가득했다. 쭉 뻗고 누워 귀만 열어놓으면 귀 불리, 배 불리 기분까지 이완의 포대기에 늘어지도록 편하게 푹 쉬게 도와주곤 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저항 없이 백언니에게 알몸을 맡긴다. 친엄마와 딸처럼 그녀는 나의 유두 크기와 음모의 분포 내력을 달 알고 있다. 저리기 일쑤인 내 몸의 왼쪽을 부드럽게 주물러 줄 때면 나의 긴장은 그녀 손끝에서 떨어져 나가고 편안해 진다. 22년 그 긴 세월의 고객 중에는 백인, 흑인, 일본인도 꽤 많고 한국 사람이 압도적이며 팁 인심도 한국 사람들이 월등 후한 편이라고 한다. 매일 나름대로의 지치고 고된 응어리가 녹아져 싱싱하게 재충전된 리듬으로 회복되어 문을 나서는 고객을 바라볼 때면 자신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물에 쪼글쪼글 불을 대로 불은 백언니의 손, 바람소리를 내면서 민첩하게 앞뒤, 아래 위를 오르내리며 나의 때 껍질을 골고루 벗겨 줄때 내 젖은 얼굴에 뚝뚝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내려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처음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인줄 알았다. 그녀의 땀방울, 그것은 그녀의 열정적인 몰두였다. 온 힘을 다해 남의 살갗에 붙은 때를 밀어내고 맛사지 지압으로 헌신하는 그녀의 노동은 100% 순도의 최선을 다함이었다. 이 때 마음속의 속때도 내 놓고 씻겨지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있는 힘을 몽땅 쏟으며 일에 전념하는 성실한 태도가 내 가슴을 감동으로 아리게 만들었다. 나는 아프다는 구실로 편하게 누워 그녀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그녀는 땀으로 목욕을 하는 듯 땀을 쏟는 게 안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여행 중에 유명한 어떤 목사가 눈앞에서 숨을 거둔 일이라며 심장마비를 일으켜 안색이 자주색으로 변하면서 숨이 끊어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사건, 놀랍고 애석한 일이었다고 술회하면서 그 후 숨이 훅 빠지는 것, 죽음이란 것이 삶 그 다음에 오는 순서라며 죽음에 대해 초연해졌고 신앙을 갖게 된 동기라 했다. 가장 속상한 일은 사우나에서는 아는 척해도 바깥세상에서 만나면 인사도 아는 척도 안하는 차별의식이라 정직하게 고백했다. 그녀의 손맛에 익숙해진 단골들은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시간을 줄이지 왜 그만 두느냐며 이제사 아쉬워한다. 생애에 한번 굳게 한 결단이 실행을 기다리고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 않는가. 전문지식이나 고학력을 요구하는 생활현장은 아니지만 관계와 고객을 잘 관리할 줄 아는 백언니야 말로 성공 때밀이 선두주자임에 틀림이 없다. 비밀스런 남의 몸 속 구석구석을 샅샅이 깨끗이 청소하는 백언니, 없수이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의 생을 열심히 살아온 생활인, 곧잘 원망하고 좌절 잘 하는 우리 이민사에 좋은 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순간순간 만나는 각각 다른 사람에게 매번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하는 그녀의 프로다움은 지식을 수반하지 않지만 퍽 이나 인간미가 풍겨서 다가가게 만든다. 백언니처럼 삶의 어느 구석에 처해도 대처할 줄 알고 정성과 성실로 열심히 일을 하는 이민자들은 실패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을 잘 경영하면서 <때>를 알고 퇴진하는 <때>밀이 그녀에게서 역시 프로다운 멋쟁이 기질을 엿볼 수 있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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