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예찬

2011.01.24 02:54

김영교 조회 수:425 추천:67

다비드 르 브르통(프랑스)의 <걷기 예찬> 걷기는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 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들을 면제받지는 못하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아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몸을 이용한 운동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걷기'이다. 따라서 걷기는 단순한 운동 차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방편이며, 제어장치 없이 돌아가고 있는 현대의 속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휴식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건강을 위해 걷기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걷기'야말로 삶의 예찬이며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인식의 예찬이라고 말한다. 사회학 전공 교수인 저자는 '걷기'라는 수단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가져야 하는 것들을 설득력 있게 들려주고 있다. 걷기를 즐긴 사람들 중에는 날마다 월든 호숫가를 걸어다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젊은 시절의 장 자크 루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저자 피에르 쌍소, 방랑을 즐긴 시인 랭보, 걸어서 일본 각지를 여행하며 많은 시와 기행문을 남긴 하이쿠 시인 바쇼 등이 있다. 이들은 여행을 즐겼으며, 걷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랑했다. 걷기는 세계을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주지만, 그것과는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 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 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그것은 오직 순간의 떨림 속에만 있는 내면의 광맥에 닿음으로써 잠정적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포기하는 행위다. 걷기는 어떤 정신 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 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센스를 새롭게 해 준다. 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본질적인 일에만 이 세계를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지고 가는 짐은 얼마 안되는 옷가지, 방향을 가늠하는 도구 등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 이상의 군더더기는 괴로움과 땀과 짜증을 가져올 뿐이다. 걷는 것은 헐벗음의 훈련이다. 걷기는 인간을 세계와 정대면하게 만든다. 소로우는 산책 sauntering이라는 말의 어원을 근거로 걷는 기술을 상징적으로 성스러운 땅에 도달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길의 자력에 발을 맡기는 것이라 한다. "이는 마치 강물이 구불구불 흘러가긴 하지만 그렇게 흐르는 동안 줄곧 고집스럽게 바다로 가는 가장 짧은 지름길을 찾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걷기는 시선을 그 본래의 조건에서 해방시켜 공간 속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속으로 난 길을 찾아가게 한다.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걷기 예찬>은 이 책을 읽는 행위조차 '혼자 걷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준다. 철학적인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이 안내하는 문학과 산문, 인문학, 사람들의 숲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한 권의 책을 다 읽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끊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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