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歲暮에 서서 김창현

2011.12.29 13:21

김영교 조회 수:381 추천:10

2011년 歲暮에 서서

지난 몇해 겨울에 들어서면 우리 내외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새해 첫날 애들 세배도 받고 몇십년 살았던 미국이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를 곰곰이 살펴 보는 것도 내가 사는 삶의 한 방식 이었다고나 할까?

솔직히 말하면 년말에 미국을 가는 것도 따지고보면 나의 발상이라고 주장할 게 아니고 젊은 날 이병철이나 장기영이 하는 노름을 흉내낸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전 가만 보면 년말만 되면 이 두 사람은 동경 가서 있다. 그게 유명한 이병철의 <東京構想>이고 장기영의 <데이고꾸 호텔의 허니두>란 그림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 되어 있다.

둘의 공통점은 아마 좁은 한반도를 훌쩍 떠나 그때만 해도 우리네 삶보다는 몇천 걸음 앞서 달리는 일본의 공기를 숨쉬며 내일을 내다보는 지혜를 찿는 한 방법이었을 터. 내가 듣기로 그들은 동경에 도착하면 책방을 순례하며 신간부터 잔뜩 사들인다.

이병철은 사계 권위자들을 초빙해서 궁금한 것을 꼬치꼬치 묻고 한국에 돌아오면 아래 사장들에게 책들을 쫙 나누어 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불러 준 책을 읽었는가 꼭 확인을 한다고 했다. 그런 방식으로 자기가 월급 주고 있는 사장들의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 나간 것이다. 내가 이걸 아는 것은 이병철이 밑에서 머슴 사장을 하던 처남한테 소상히 들어서다.

흔히들 생각하기로 이건희가 애비 잘 만나 재벌놀이 하는 줄 착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무지무지한 독서가 어눌한 그의 뒷모습 뒤에는 숨어 있다. 이병철이가 아들도 가차없이 단련을 해 놓은거다.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 <데이고꾸 호텔 허니두> 이야기는 내가 모시고 있던 부장이 어느해 년말 장기영이 한테 불려가 데이고꾸 호텔에서 하룻 밤 자면서 한 접시에 내 한달 월급도 넘는 값의 허니두를 먹고와 두고두고 자랑 하면서 생긴 천일야화다.

장기영이는 한국으로 돌아올 때 신간을 한아름 사와 논설위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읽고 원고지 20매씩으로 서평을 적어오라고 해서 자기의 시야를 넓혀 나갔다.

  

매주 월요일이면 아침부터 Skype를 열어 놓고 손녀들을 기다리는 게 우리 두 늙은이의 큰 낙(樂)중에 하나다. 매주 큰다. 애들은 일주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화면에 나타난다. 애들 크는 것 이란 게 이렇게 하루 하루 다른 것이구나 새삼 놀란다. 큰 손녀한테 할애비의 영어 발음이 엉터리라고 영글맞게 교정받는 것은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할애비가 한국에 온지도 벌써 20년 세월이다. iPad로 한글을 익혀 할미가 영어로 물으면 정확하게 한글로 대답한다. 스페인어는 모계의 언어다. 내 며느리의 친척은 마드리드에 제일 많다. Villanova에 살 때 애미 직장인 Johnson & Johnson 유치원에서 스페인어를 배워 엄청 잘 조잘 거렸다.

지난 일요일 크리스마스 날 Skype를 열어 놓고 선물 받은 것 할비 할미에게 다 보여주고 희희닥 거리다가 애비가 할비한테 중국말 하면 알아듣는다고 하니 만다린어를 줄줄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언젠가 아들보고 나도 대학 다닐 때 중국어회화를 2년 공부 했노라고 한 게 화근 이었다. 의사도 좋지만 중국어 하나는 완벽하게 공부하라고 권하면서 나도 대학 다닐 때 당대에 제일 석학인 김청강 선생 이란분 한테 중국어 회화를 2년 공부한 적이 있다고 덛붙인 적이 있다. 사실 김청강 선생은 중국어 보다 화가로 고명하고 상해에 오래 살았던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었던 신사이었지만 어렵던 시절 대학 중국어회화선생으로 생업을 잇던 노대가다.

아들하고 올겨울 미국 가는 것에 대해 여러 차례 상의를 했는데 2월말경에 들어오시라고 권유를 받았다. 손녀들을 돌보아주는 사돈내외의 해외여행계획이 그때 잡혀 있다는 것이다.

  

내년 검은 용(龍)해, 중요국가에서 59개 선거가 있다는 기사를 얼핏 읽은 기억이 난다. 미국 다녀온지 근 일년 되는데 미국의 형편이 말씀이 아닌 것 같다. 도로를 재포장할 돈이 없어 석기시대로 되돌아 갔다는 기사도 읽었다. 아예 도로가 헐면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자갈을 깔아버린다는 거다. 유지보수할 돈이 지방정부에 없어 동부지역엔 여상(如常)이 되어간다고 전한다. 나도 여권 갱신을 하러 갔다가 우체국 문이 닫겨 돌아선 적이 있다. 미국서는 여권갱신을 우체국에 가서 한다. 한국으로 치면 동회역할을 하는 DMV가 예산이 없어 주중 하루 문 닫고 선생들이 예산 삭감 한다며 줄줄이 쫓겨나고.... 의사 겸 교수로 일하는 내 아들 마저 양질의 건강보험을 가진 환자가 줄어들어 구상하고 있는 venture project에 매달려 있단다. 자연 우리 아들네 경제는 Johnson & Johnson 회사 이사로 일하고 있는 며느리 손에서 돌아간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제3세계 국가에 하나의 경제모델로 제시되었던 워싱턴 컨센서스는 풀이 죽어버렸고 어느날 갑자기 G-2의 하나로 찬란하게 얼굴을 내민 베이징 컨센서스가 한 수 높은 품위를 자랑한다. 얼마전 나는 習近平의 평전을 읽고 아하 이런 일리가 숨어 있었구나 무릎을 쳤다.

도올같은 만능 엔터테이너는 中庸강의를 통해 그래도 자유 평등 형제애를 찿아 수많은 난관을 헤쳐온 성경의 文法을 희화화 할대로 우숩게 욕해버린다. 서구발전의 추동력, 민주적 가치는 이제 흑인 피자가게 CEO까지 나서서 미국을 망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코카콜라 회장 전속 운전사의 아들이자 그집 하녀를 엄마로 둔 허먼 케인의 아메리컨 드림을 더 근사하다고 보는 색맹이다.

“롬니는 싫어....” 물론 미공화당 표밭의 롬니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반감을 자산 삼아 소탈, 유머, 뚝심 하나로 멍청이 처럼 9-9-9 같은 개소리를 짓거리며 무식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지만. 그는 나는 ABC(American Black Concervative)라고 서슴없이 외치며 개인, 법인, 판매세를 9%에 묶겠다고 나섰다가 경제는 經자도 모르는 민심이 잠시 머물렀다 떠나갈 주차장 같은 녀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나처럼 암을 앓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해박한 유머로 애틀란타 토크쇼 진행자로서 두둑한 뱃심을 나는 사랑한다. 나는 나처럼 동끼쇽뜨 기질의 사나이가 숨 쉴 수 있는 대륙, 미국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최근에 읽은 조지 프리드먼의 글에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환란보다 더 지독했던 미국의 과거도 다윗왕의 반지에 새겼던 “모든 것은 지나간다” 라는 구절처럼 사라지고 또다시 태양은 미주 땅에 솟아 오르리라고 갈파했다. 암 그래야지.... 우리는 존 스타인백의 소설을 읽고 큰 세대가 아닌가? 나는 서슴없이 Saddleback Valley Kim氏의 시조로 자부심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는 잡종인데.

내가 한 나이라도 젊었다면 뱃장 하나 명품인 내 둘째 손녀를 백악관으로 보낼려고 백일몽을 꿈꾸고 있을텐데.... 늙었다는 게 요즘처럼 실감 날 때가 없다.

  

2011년은 이세상의 독재자란 독재자는 확 쓸어 지옥으로 보내버린 해다. 아주 통쾌무비의 한 해다. 눈물을 흘린 사람은 핵개발 뒷돈을 남몰래 집어준 남편을 둔 한 늙은 여인과 초대 평양대사를 자처한 One eyed Jack 밖에 나는 기억 못한다. 갑자기 온 세상이 손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묶은 스시라는 걸 만드는 칼잽이의 입만 4천만이 뚫어져라 처다 봤다. 그가 혼자 북한 전문가고 나머지는 모두 넥타이 맨 사기꾼들로 TV 화면을 뒤 덮었다. 지나 내나 알기는 뭘 알아... 개뿔도.

  

올해 들어 눈이 침침해 내가 가진 내거리, 다초점, 돋보기, TV보는 안경 등등.... 7개를 안경집에 가져가 두 번이나 도수를 올리느라 기백만원 썼다. 내게 남은 하나의 중독증, 즉 책만 보면 사버리는 습성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는 자연의 엄명이었다. 사다 놓고 제목만 보고 밀쳐놓은 책만 기백권은 있는데도...

삶의 방법을 바꾸라는 세월의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요 며칠 차를 한 대 살까 하고 딜러들을 순례했다. 처음 내가 미국서 왔을 때는 월급쟁이 사장노릇 했으니까 차걱정은 안 했는데 이리 저리 사연이 쌓이고 내 돈으로 차를 사야될 형편이라 그때는 제일 좋다는 그랜져를 하나 샀는데 아내가 미국서 들어오더니 차 키부터 뺏아 내 여 동생 주어버렸다. 한국서 운전 하다가는 황천 가기 꼭 알맞다며.

그런데 이제는 책도 못 볼 눈이 되어버렸고 TV는 원래 뉴스나 보고 다큐멘터리 아니면 Travel 채널 밖에 안 보니 차나 한 대 새로 사서 산천구경이나 다니다가 죽을까 생각 했다. 나는 원래 75살 이상 살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때쯤 잠자다가 가버렸으면 하는 게 내 소원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2년 반 남았다. 남들은 죽는 걸 엄청 무서워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어째 별종이 돼서 그런지 그저 나이 들면 죽겠지 하는 단순한 마음 뿐이다. 예수 안 믿어 지옥 가야한다면 나는 외면 하지 않겠다. 거기가면 나 같은 숱한 잡놈들 만날테니까.

문득 이 歲暮 홍윤숙의 시가 뇌리를 스친다.

  

마지막 공부

  

이제 손을 놓고 헤어져야 한다.

여기까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랑 또는 미움의 꽃밭도 일궜지만

여기서부터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나라

아득한 適所의 邊方이다.

편지 하지 마라. 전화도 사절이다.

나는 여기서부터 아무도 모르는

마지막 공부에 골몰하고 있다.

잊혀지고 작아지고 이윽고 부서져 사라지는 법

이 세상 마지막 공부에 땀 흘리고 있다.

  

죽어 염라대왕이 네 이놈 너도 거 弗文學인가를 했다는 보들레르

같은 잡놈이냐 물으면 나는 대답 할 말이 없다.

다문 옛날에 읽었던 Gustave Lanson의 弗文學史라도 한 열 번은 읽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예”라고 대답할 준비나 해야겠다.

  

이 해도 저물었다.

  

Dec 30, 2011. 씨야.



  
15 임수자  이 해가 가기 전에 선배님과 사시미 놓고 정종 한잔 하려 했습지요.
혼자만의 생각이었습니다만..이제 이 글을 통하여 선배님 근황을 알았으니
‘기체후일향망강’..까지 써 놓았던 카드를 접습니다.

손녀 별하를 ‘24 hours watch’하는 의무를 이행하느라 고행 중입니다.
adt(무인경비)를 도입하는 방법을 연구 중입지요.

사모님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기 기원합니다.

임수자 拜
11·12·29 19:32

김호중  

오래간만에 김 선배님의 글을 읽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하도 소식이 없으셔서 혹시 몸이 편찮으신가 걱정 많이 했지요.
저는 워싱톤 기독교방송국 "월급사장"으로 청빙을 받아서 한 2년 외도하게 됐습니다.
담임목사 인수인계하고 이사할 집 구하며 신임인사 하느라고 요즈음 혼좀 났습니다.
1월 3일부터 워싱톤 디씨에서 일하니 신임직장에서 배울 일도 많을 것 같아서
부고USA 관리자로 심부름 하는 일 소홀할까 걱정되어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습니다.
오늘 밤도 그럴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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