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나오라/장재언목사

2008.11.15 02:51

김영교 조회 수:321 추천:36

한국교회여
골목에서 나오라

한국교회의 신앙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한국교회의 불변의 설교 주제는 단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하신 예수님 그로 말미암는 구원이다.

설교 뿐만이 아니다. 교회마다 빠짐없이 제자훈련을 시행한다.
그런데 제자양육의 목표가 뭐냐? 바로 '개인적인 구원의 확신'이다. 훈련자들은 대개 "너 지금 당장 죽으면 천국 갈 자신 있니?" 라는 물음으로 신앙을 측정한다.

만일 신앙이 그런 것이라면 구원받은 그날부터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최권능 목사의 '예수 천당'(불신 지옥)에서 한 발자국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실정이 그러하다.



바르게 이해하자면, 예수 믿으면 구원얻는다는 건 신앙의 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에 불과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았으니, 이제부터 천국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한국교회는 대단히 취약하다.



성경이 이에 대해 뭐라 말씀하시는지 들어 보자.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히 6:1~2)



우리에게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권면한다.




'도의 초보'가 뭔가? - 회개, 믿음, 세례, 안수, 부활, 심판에 관한 교훈들이다.(히 6:1,2)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교훈에 관한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라고 권면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교회는 일년 열 두달, 아니 한 평생을 '예수 믿고 구원'에서만 머문다.


정말 답답한 노릇 아닌가?



운전할 때, 초보는 일주일이면 족하다.


그런데 어찌하여 교회는 만년 초보신앙의 티를 벗지 못하는가?
1년된 신자나 30년 된 신자나, 초신자나 장로나 평생 듣는 것이 십자가와 구원 뿐이다. 그러고서야 어떻게 신앙의 성숙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언제 그리스도의 초보에서 벗어날 것인가?



구원받은 신자라면 당연히 '크리스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관심이 많을 게다.


그러나 교회는 이제까지 이에 대해 무어라 말해 왔는가?


'성경 읽기 - 기도 - 전도 - 교회 봉사'...., 이것 말고 없다.

그런데 이런 것만 하면 크리스챤의 삶이 완성되는가?


사회정화 - 지역변화 - 이웃사랑... 할 일이 너무많다.



우리 주변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가?




이혼이 급증하고 있는 가정의 위기에 대해, 무한 경쟁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에 대해, 대문을 맞대고 사는 아파트촌에서의 이웃관계에 대해, 환경문제나 교통문제 같은 시민의식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햇볕과 먹구름을 오락가락하는 남북문제에 대해, 교회와 정치권력과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에 대해, 심각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교회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그리고 가치관의 파괴로 나타나는 혼란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크리스챤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이며,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사랑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바울은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제자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가?


크리스챤의 생활양식(life style)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빛과 소금의 삶을 살 수 있는가?


한국교회의 문제는 이러한 교회 밖의 문제들에 대해서 할 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대교회를 '골목교회'라고 부른 학자가 있다.(R.아돌프스)


교회가 골목 속에 묻혀 사는 모양을 두고 말한 것이기도 하려니와,  정작 그 의미는 현대교회가 문화의 중심부에서 소외되어 주변그룹으로 밀려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골목교회는 현대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말하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적인 구원만을 되풀이하면서 존립하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골목교회가 잃어버린 언어들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교회가 이 일에 실패하면 교인들은 중요한 문제에서는 자기들에게 친숙한 세상의 기준을 적용하고자 할 것이고, 그러면 교회 안의 예배와 교회 밖의 생활의 간극은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의 언어가 변해야 한다. 그리스도 도의 초보는 신앙의 기초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기초공사만 할 것인가? 기초가 닦였으면 그 위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건물을 쌓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구원의 초보만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구원 이후의 삶' 곧 '복음에 합당한 삶'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자면 교회의 가르침의 언어가 더욱 더 구체적, 현실적이어야 할 것이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11
전체:
647,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