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지우게가 없다

2010.07.09 11:07

김흥묵 부고필라 조회 수:135 추천:31

사람의 두 눈은 왜 얼굴의 맨 위쪽에 위치하고 있을까. 눈과 귀와 콧구멍은 두 개씩인데 유독 입만은 한 개 뿐일까. 입은 닫을 수 있고 눈은 감을 수가 있는데 귀는 항상 열려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혀는 어째서 이와 입술의 이중 장벽 속에 갇혀 있을까.

조물주가 창조한 생명의 신비, 인체의 비밀은 너무나 오묘합니다. 인간의 지혜로 그 메커니즘을 모두 풀기란 불가능한지도 모릅니다. 다만 사람의 상상력은 과학기술보다 먼저 그 신비와 비밀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허구든 경구(警句)든 e-mail에 나도는 「이목구비의 신비한 배치」에는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오관(五官)은 오감(五感)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감각 기관, 즉 눈(시각)ㆍ귀(청각)ㆍ코(후각)ㆍ혀(미각)ㆍ피부(촉각)를 일컫습니다. 이 중 피부를 제외하곤 모두가 얼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얼굴도 피부로 덮여 있으니 실은 오관 전부가 얼굴에 집중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 중 눈은 얼굴 맨 위쪽에 있습니다. 모든 일을 근시안으로 보지 말고 멀리 내다보라는 소명이랄까. 눈이 머리 앞쪽에 박힌 것은 매사에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라는 뜻이랍니다. 눈이 보배요, 자기 눈보다 나은 목격자는 없다고 했으니 항상 바로 보아야겠지요.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합니다. 눈이 안정되지 않은 사람은 마음도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흉중이 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흉중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눈동자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구태여 소개장이 필요없습니다.


‘저 달은 하나라도 팔도를 보건마는
요 내 눈은 둘이라도 임 하나밖에 못 보네.’

청양(靑陽) 민요의 가사 한 대목입니다. 재미있는 시적 표현이지만, 눈에 콩깍지가 끼거나 제 닭 잡아먹는 장님 눈으로는 사물을 적확히 볼 수 없다는 은유가 담겨 있습니다.

눈은 무엇이든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은 볼 수 없습니다. 형제들 눈에 든 가시를 보면서, 제 눈에 든 들보는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런 청맹(靑盲)을 경고했습니다. “네 눈이 너에게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버려라. 한 눈을 가지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나으리라”고.

귀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남의 말을 차단하지 말고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입은 한 개인데 귀는 두 개입니다. 말은 적게 하고 듣기는 곱으로 해야 한다는 섭리입니다. 입보다 귀가 위쪽에 위치한 것은 자신의 말보다 남의 말을 더 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죄악에 엄청나게 엄격했나 봅니다. 귀가 없는 자화상의 주인공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어느 날 창녀촌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무심코 성서를 펼쳐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너의 오관의 하나가 타락의 죄를 범하거든 그것을 잘라 불에 던져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면도칼로 귀를 잘랐다고 합니다.

얼굴의 맨 아래쪽에 있는 입은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이빨 성벽과 입술 성문으로 막혀 있습니다. 미움과 분열의 원인이자 화의 근원인 혀의 준동을 막는 게 목적이랍니다. 혀를 잘못 놀려 상처를 주는 일이 많으므로 꼭 진실하고 필요한 말만 하라는 창조주의 교시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한평생 대략 500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한마디가 천금의 무게를 지니거나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패가망신하거나 멸문지화를 당하게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일찍이 ‘평생 선(善)을 행해도 한마디 말의 잘못으로 이를 깨뜨린다’고 경계했습니다. 석가모니도 ‘입은 몸을 치는 도끼이며, 몸을 찌르는 칼’이라고 비유했습니다.

말의 폐해는 옛날부터 순기능보다 심했던 것 같습니다. ‘입은 머리의 항문(肛門)’ ‘입과 말(馬)의 공통점은 둘 다 재갈을 필요로 하는 것’ 같은 격언이 있을 정도니까요. 쏟은 물을 되담을 수 없듯 한 번 뱉은 말은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으니 참으로 말조심 입단속이 중요한가 봅니다.
그러려면 수시로 거울을 쳐다보며 이목구비가 왜 그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 한 번씩 음미해 보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출처: www.freecolumn.co.kr - 자유칼럼그룹, 201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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