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산책-안도현/중알일보
2007.02.07 15:54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3행에 불과한 이 짧은 시안에
우주 크기 만한 사랑의 질책이 고함치고 있습니다.
아! 우리 인간은 얼마나 많은 말의 연탄재를 발길로 차고
술 취한 무책임의 발걸음으로 내가 사는 동네 골목을
꼴불견으로 만들었는지요?
압축된 말로 32 글자 밖에 안 되는 위의 시는 짧지만 주는 감동과 여운은 큽니다.
삶의 겨울을 지나는 동안 남을 위해 자신을 하얗게 헌신한 적이 없었던 모습을
한 해를 마감하는 계절에 깊이 반성하게 만듭니다.
따스한 인생의 아랫목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의 불씨를 지피는 누군가의 수고 끝에 늘 아랫목은 뎊혀져 왔습니다.
12월의 거리에 무딘 가슴을 두드리는 자선냄비의 딸랑딸랑 종소리가 바람 앞에 서있습니다. 누군가의 아랫목이 되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싸늘한 바람에 목이 시린 겨울 오후, 아랫목 운동에 참여하는 조그만 손길의 뜨거운 사람이 되어줄 때 우리 모두가 따뜻한 세모를 지내게 될 것이고 서로에게 따뜻한 이웃이 될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연탄 한 장' 또 '반쯤 깨진 연탄'등 연탄 시리즈로 우리를 따뜻한 세계로 안내하고 있는 교사 출신 안도현 시인은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으며 작고 하찮은 것에 애착을 보인 <외롭고 높고 쓸쓸한>시집 첫 장에 "너에게 묻는다"가 실려있습니다.
1984년 <동아일보>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서울로 가는 전봉준>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그대에게 가고 싶다>등의 다수의 시집이 있습니다.
김영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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