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곡/이경란 영전에/김영교

2011.01.10 08:03

김영교 조회 수:220 추천:32

45세에 암으로 사망한 후배 한창연의 조사를 한적이 있는데 1995년이니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목사의 사모인 창연이는 무척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무척 놀랐고 애석했지요. 하나님의 <때>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57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배 이경란집사, 오늘 두 후배를 떠올리며 조사를 하는 이 선배가 참 염치없습니다. 저로 하여금 투병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게 하시고 덤으로 준 생명을 고마워하면서 이런 자리에 이렇게 세워주시어 조사를 하도록 배려하시는 주님의 의도가 무엇일까 두렵기도 하면서 순종의 숨은 뜻을 감지했을 때 많이 떨려습니다. 사 오년 전 인가요. 옥스포드 호탤 연말 동창 모임에서 얼굴 반을 차지한 경란 후배의 함박 미소를 발견했을 때 그 반가움이란! 왜냐하면 우리는 새벽예배 후 공원산책 팀이었습니다. 학교 후배라니, 세상 좁구나 싶었고 더더욱 끈끈한 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자신의 취직 알선이며 남편의 사업, 두 딸의 잘 자라는 모습, 곁 드려 주로 신앙체험과 성경에 대해 얘기를 진지하게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전화도 자주하고, 식사도, 커피도 함께 나누는 다정한 선후배가 되 갔습니다. 함께 보담아 준 친구 중에는 육은희권사, 이영권사, 윤정애권사가 떠오릅니다. 신은희권사도있구요. 제가 후배를 마지막 본 것은 지난 달인가요? 가디나 금난교회에서 있었던 정태기목사의 내적치유 부흥회였습니다. 감성의 민감한 더듬이를 가진 경란 집사도 저처럼 상처가 많아 내적 치유가 필요했던가 봅니다. 두 딸 얘기를 대화에 올릴 때는 경란 집사는 행복해 보였고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몸가짐이 곧고 신앙심이 돈독하여 자녀 앞에서 성경 읽고 기도하던 어머니, 자녀 앞에서 싸우는 일은 죄짓는 일이라며 가정을 무던히 사랑하고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던 여린 아내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자아가 흔들리는 듯 인간본연의 고독, 피조물의 유한성, 물질풍요에 따르는 위협, 가슴은 늘 외로움에 떠는 늦가을 나무에 붙어있는 불안정한 잎새 하나 였습니다. 많은 경우 용서가 안되는 속내를 믿음으로 승화시키려 기도에 매달리던 딸이기도 했습니다. 그 딸의 구도의 길이며 영생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확신은 말씀 안에서 그리고 기도에서 기도로 냇물이 강물로 이어져 흐르고 흘렀습니다. 기력이 딸려 쉬 피곤해 하던 후배 이경란집사는 근래에 들어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삶에 적용하려 무던히 몸부림친 믿음의 딸로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쫒기던 터라 전화가 길어지면, 그것도 자주 걸려오면 성가셔했고, 나는 인내심의 바닥을 내보이며 어떤 때는 짜증스러워 경청하지 않았고 지금 이 선배는 상담원이 못되는 지혜 미달의 내 입술을 이렇게 미안해 하고있습니다. 경란집사, 오늘 당신의 침묵 앞에 회개합니다. 이 넉넉하지 못한 가슴을 회개합니다. 오늘 당신의 갑작스런 <쉼>에의 진입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십자가 위에서 온몸을 내어주기까지 한 사랑의 완성 사건과 겹치면서 덜 깨어있는 저를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오십 일곱 번 째 가을, 솟아오르듯 사라지는 하얀 구름 숲을 스치며 푸른 창공을 지나, 천상으로 가는 순수의 흰 꽃길을 마냥 날아 올라 갔으리라 확신합니다. 찬송의 들판을 휘돌아 기도의 산맥을 올라가 인간이 지나가는 길, 그 길을 - 장녀 경준의 표현처럼 주님이 사뿐히 안고 말입니다. 차녀 호준의 말 처럼 천사처럼 가볍게 말입니다. 그 선명한 길, 나이나 순서나 서열이 없는 그 길 나를 앞질러 곁에 당도한 이 서두름이 현기증처럼 우리 모두를 어지럽게 합니다. 놀라움과 안타까움에 가슴은 무너지고 눈물이 솟구칩니다. 그 미소 다시 볼 수 없고 그 기도하던 손 맞잡을 수 없어 기도의 동역자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우리를 김빠지도록 아찔하게 합니다. 이제 주님 품에 안겨 아래 세상을 내다보며 여전히 기도의 베틀에 앉아 더 따듯한 마음으로 포용의 미덕을 베풀지 못한 이 선배를 위해 용서의 천을 짜 주시지요! 인생여정에, 순간마다 '것이 의 마지막이다'싶게 경청하는 지혜를 간구하는 이 선배에게 교훈을 남긴 경란 후배가 그지없이 아쉽고 또 고마워 나의 스승처럼 느껴집니다. <화려한 외출>이란 시속의 시 한편으로 잠간의 작별을 애도하려고 합니다. 숫한 만남이 얽힌 세상에서 해마다 외출을 했습니다. 비오는 날도 있었고 바람 높은 날도 있었습니다. 대개는 햇빛 화창한 맑은 날들이었습니다. 만월이란 남자와의 결혼이란 기대 부픈 만남도 있었고 경준과 호준, 두 딸 출산의 기쁜 만남도 있었고 태평양을 건너는 먼 이삿짐의 고달픈 만남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2007년 9월 18일 오십 일곱번째 가을 문턱에서 <화려한 외출> 하나를 목격합니다. 곱고 여린 딸의 일회용 외출 그것은 주소변경이었습니다. 후배 경란 집사의 영혼은 이제 주소가 바뀌었단 말입니다. 땅에서 하늘로 지상에서 낙원으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옮겨진 주소변경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 이 말씀이 사랑하는 유족과 저, 여기 모인 여러 성도님들의 고백이게 허락한 경란집사의 고별인사, 이제 성령님의 타취하심으로 슬프지만 고마운 마음이 자리잡습니다. 눈물도 한숨도 외로움도 없는 그 곳에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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