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 버트런드 러셀

2011.05.01 17:57

남정 조회 수:262 추천:41

♣ 교회는 어떤 방식으로 진보를 저해해 왔는가 (How the Churches Have Retarded Progree)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내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가지 사실을 들어보자. 이 얘길 들으면 여러분도 수긍하게 될 것이다.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교회는 우리로 하여금 유쾌하지 못한 사실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한 순결한 처녀가 매독 환자에게 시집을 갔다고 가정해보다. 이런 경우 가톨릭 교회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파기할 수 없는 신성한 맹세이니 너희는 평생을 같이 살아야한다." 게다가 이 여인은 매독에 중독되어 태어날 아이를 낙태하고 싶어도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게끔 되어있다. 이런 것이 바로 가톨릭 교회가 하는 말이다. 나는 그것을 악마적 잔인성에 다름 아니라고 단언하는데, 타고난 동정심이 독단으로 깡그리 포장된 사람이 아니라면, 도덕적 본성이 모든 고통의 감각 앞에 완전히 마비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러한 혼인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올바르고 적절하다고 주장할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위의 얘기는 일례에 불과하다. 현재 이 순간에도 교회는 자칭 도덕이라는 것을 강요함으로써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게 과다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교회는 인간의 행복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편협한 행동 규범을 정해 놓고, 그것을 도덕이라고 하기 때문에 교회의 주요 역할은 여전히, 세상의 고통을 덜어주는 모든 방면의 진보와 개선을 반대하는 수준에 머문다. 만일 여러분이 이러저러한 것은 인간의 행복에 도움이 되므로 그렇게 행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들은 인간의 행복과 그 문제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행복이 도덕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도덕의 목적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이다. ♣ 종교의 기반은 두려움이다 (Fear, the Foundation of Religion) 종교의 일차적이고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이 온갖 곤경이나 반목에 처했을 때 여러분 편이 되어줄 큰 형님이 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이기도 한다. 두려움은 그 모든 것의 기초다. 신비한 것에 대한 두려움, 패배에 대한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두려움은 잔인함의 부모이다. 따라서 잔인함과 종교가 나란히 손잡고 간다고 해서 놀랄 것은 전혀 없다. 이 세계를 사는 우리는 과학의 도움으로 이제야 사물을 좀 이해했고 어느 정도 정복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과학이 기독교와 교회에 맞서, 또한 모든 낡은 교훈에 맞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어렵사리 전진해 온 덕분이다. 인류는 세세손손 그 오랜 세월 비굴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으나 과학은 우리가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과학은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우리의 마음도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본다. 이제는 더 이상 가상의 후원자를 찾아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늘에 있는 후원자를 만들어내지 말고, 여기 이 땅에서 우리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이 세상을, 지난날 오랜 세월 교회가 만들어 온 그런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 적합한 곳으로 만들자고 말이다. ♣ 우리의 할 일 (What We Must Do)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발로 서서 공명정대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세상의 선한 구석, 악한 구석, 아름다운 것들과 추한 것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되 두려워하지는 말자. 세상에서 오는 공포감에 비굴하게 굴복하고 말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세상을 정복하자. 신에 대한 모든 관념은 동양의 고대적 전제주의에서 나왔다. 자유인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며 끔찍한 죄인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 저럴 수 있을까 경멸감마저 든다. 우리는 굳건히 서서 이 세계를 진솔하게 직시해야한다. 있는 힘을 다해 세상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바라던 만큼 되지 않을 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온 세상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지식과 온정과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 혹은 오래전에 무식한 사람들이 뱉어 놓은 말들로 자유로운 지성에 족쇄를 채우는 짓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두려움 없는 직시와 자유로운 지성이 요구된다. 죽어버린 과거만 돌아보고 있을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의 지성이 창조할 미래가 죽은 과거를 훨씬 능가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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