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ongAngUSA.com 미주중앙일보       신문발행일 : 2009년 6월 2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학 에세이]   지렁이의 미덕

김현영/산칼로스대학 초빙교수

지난 2월 중미 니카라과에 있는 목장을 방문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후원하여 만든 교육훈련 시범목장이다. 가난한 농촌개발을 위하여 그 지역 농민들에게 산양, 닭 등 농장동물에 대한 사육과 위생을 교육시키고, 또한 목초 재배와 토양 복원에 대한 기술교육도 하고 있다.

그 중에는 지렁이에 대한 기술교육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졸업생들은 지렁이를 포함, 산양•닭•토끼를 무상으로 공급받고 농촌으로 돌아가 지역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지렁이는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동물이다. 낙엽 같은 유기물질을 채취하여 땅 속 깊은 서식지까지 운반하여 흙과 함께 먹고 사는데, 토양을 파고 사방으로 많은 작은 굴을 만들어 통풍과 배수를 원활하게 하는 쟁기 역할을 함으로써 산소 공급이 잘되는 숨쉬는 토양으로 만들어준다.

지렁이의 분변토는 땅 표면으로 옮겨져 산성화된 땅을 중화시키고 비옥하게 하는 가장 질이 좋은 자연 비료로 알려져 있다.

100 에이커 규모의 이 교육훈련 목장에도 20여개의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든 지렁이 분변토 생산장이 있었다. 그 안에는 산양•닭•토끼 등 동물의 똥과 함께 흙과 낙엽이 섞여 있고 그 속에는 지렁이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이 상태로 3~6개월이 지나면 지렁이들이 계속 번식하여 그 숫자가 수십배로 증가한다. 수많은 지렁이들이 그 많은 흙과 유기물들을 모두 삼킨 후 소화를 시켜 배설하면 애초의 흙은 분변토로 변하게 된다. 이 분변토는 검은색을 띈 부드러운 흙가루 같은 모양인데, 똥냄새는 다 없어지고 신선한 흙냄새를 풍기게 된다.

지렁이가 토양을 경운하고 영양가가 좋은 분변토를 배설하여 농작물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영국의 유명한 찰스 다윈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윈은 이미 1881년에 지렁이에 대한 책을 출판하여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저서에서 “농업에서 이용하는 쟁기는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값어치있는 발명품의 하나다. 그러나 쟁기가 발명되기 전의 세상에서는 지렁이가 그 역할을 담당해 왔다”라고 지렁이를 극찬하였다.

쟁기는 작물을 재배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 도구로서 땅을 갈아엎어 땅 속으로 공기와 함께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여 땅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농사가 잘되는 비옥한 토양에 지렁이가 많이 살고 있는 것도 다 이런 까닭이다.

지렁이는 낙엽, 동물의 배설물, 흙 등 유기물이 함유된 것은 무엇이든지 입으로 삼킨다. 이 먹이는 식도를 통해 단단한 근육질로 만들어진 모래주머니(닭의 그것과 비슷하다)로 옮겨져 모래알을 이용해 잘게 부수어 창자로 보낸다.

지렁이의 창자에는 유익한 세균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유기물질을 분해하여 각종 비타민, 광물질, 탄수화물, 단백질 등을 만들어 지렁이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나 세포합성 물질로 공급된다. 창자에서 소화되지 않은 것은 항문을 통해 분변토로 배설된다. 지렁이는 포유동물과는 달리 매일 자기 몸무게에 해당하는 양의 분변토를 배출한다.

최근 지렁이는 농업 및 산업 폐기물 처리 등에 산업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필자가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농장동물 선교 비영리단체(Heifer International)에서는 지난 50년간 한국을 비롯, 전세계 128개국에서 농민들에게 젖소나 젖양을 공급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농작물이나 목초를 생산할 때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대신 젖소와 산양에서 나온 배설물로 자연비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렁이를 보급 하고 있다.

지렁이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땅에는 생명이 있다. 지렁이는 토양 속 많은 생물체들의 서식환경을 보호해주고 온갖 공해물질을 먹어치우며 정화시켜 생태계를 살리는 유익한 일을 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고 있는 농약과 화학비료 등 온갖 공해물질을 양산하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보다 훨씬 더 유익한 일을 하는 셈이다.

건강한 땅에서 건강한 식물과 동물이 살 수 있다. 또 이같은 건강한 먹이를 식용으로 섭취할 때 인간도 건강해질 수 있다면 지렁이를 만들어주신 창조주께 감사기도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