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Ode to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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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안경/ 정다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내의 안경을 닦는 남자

오늘도 안경을 닦아

잠든 내 머리맡에 놓고 간다

그가 안경을 닦는 일은

잃어버린 내 눈을 닦는 일

그리하여 나는 세상에서 가장 푸른

새벽과 아침을 맞이하지만

그때마다 아픔의 무늬 닦아내려고

그는 얼마나 많은 눈물 삼켰을까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안경의 렌즈를 갈고 닦았다는

철학자 스피노자

잃어버린 내 한쪽 눈이 되기 위해

스피노자가 된 저 남자

안경을 닦고 하늘을 닦아

내 하루 동안 쓴 안경의

슬픔을 지워, 빛을 만드는

저 스피노자의 안경

 

- 시집 『스피노자의 안경』(고요아침.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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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는 생계수단인지 취미생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무를 심는 대신 안경알을 깎다가 4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안경알의 미세한 가루가 허파 속으로 들어가서 폐병을 앓다 죽었다는 말도 있고, 밤을 새우며 범신론적 세계관과 합리적 인식론을 체계화하는 연구에 몰두하다가 과로로 병을 얻게 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스피노자와 같이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내의 안경을 닦는 남자’는 바로 시인의 남편 되는 손춘식씨다. 시인의 남편이 매일 안경을 닦아 잠든 아내의 머리맡에 놓는 데는 슬픈 곡절이 숨어있다. 정다혜 시인은 20여 년 전 자동차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다. 자신이 운전하던 차의 옆자리에 타고 있던 어린 딸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해 여름 길 위에서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시인은 내내 콩밥 먹는 죄인의 심정으로 먹먹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절망 가운데서도 남편은 아내의 쪼그라든 가슴에 희망의 두레박을 내렸다. 시인의 남편은 우울증에 빠진 아내를 사랑의 힘으로 ‘시’의 세계에 인도했던 것이다. 2005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경희사이버대학 문창과를 졸업하고, 시집을 두 권 내는 동안 남편은 아내의 시 쓰는 작업을 위해 매일 출근 전 아내의 잃어버린 ‘한쪽 눈’인 안경을 정성껏 닦았다. 그리하여 시인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가장 푸른 새벽과 아침을 맞이’하도록 했다.

 

 그런 남편이 시인에게는 ‘스피노자’가 안경을 만지는 모습으로 비쳐졌고, 잃어버린 한쪽 눈보다 더 밝은 빛이 되어주는 남편이 있기에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시인은 오직 시를 통해 산탄으로 몸에 박힌 슬픔의 통점을 다스렸고, 삼켰던 울음을 정제하여 시를 썼다. ‘아내의 안경’은 남편에게 한 그루 사과나무이며 아내의 안경을 닦는 남편의 위대한 노동은 바로 사랑의 원형질인 것이다. 

 

 시인은 “시가 있고, 남편이 있고, 스피노자의 안경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가졌다면 그는 사랑의 철학을 실천하는 철인(哲人)이다. 매일 매일 그 누구를 위해 작은 일을 다짐하고 행한다면 그가 바로 성인(聖人)이 아니고 무엇이랴.( 해설 권순진)


만약 그대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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