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름다운 재혼

2006.01.30 09:33

김영교 조회 수:612 추천:110

재혼을 앞둔 친구가 있다. 인생의 늦가을을 맞이한 나이다. 이 나이에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당사자들은 스스로의 노출을 극히 꺼려하기 때문에 나 역시 재혼 이야기를 한다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지금 재혼을 앞둔 친구는 남편과 사별한지 10여년이 훨씬 넘었다. 자녀들 잘 키워 학업을 다 마치고 돕는 배필들을 만나 좋은 가정을 가꾸고 있어 보기에 무척 대견스럽다. 친구는 조용하게 살면서 봉사활동과 문화생활, 여행을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노년을 그 나름대로 알차게, 짜임새 있게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친구는 재혼을 의논해왔다. 친구는 나이에 비해 얼굴도 몸매도 곱다. 그동안 많은 재혼자리를 주위에서 알선했지만 늘 잔잔하게 웃으며 거절의 뜻을 비쳤기에 약간 놀랐다. 친구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들려주었을 때 나는 재혼을 적극 찬성했다. 양쪽 다 사별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그 절절한 외로움을, 가슴 저미는 슬픔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가치관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사물을 보는 눈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나누며 이웃에 베푸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서로 아끼며 여의는 슬픔의 체험을 승화해 여생이 아름다운 꽃밭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고 믿어 졌다. 남의 아픔도 다독 일 줄 아는 영혼이 성숙한 거인들이 되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없고 우리만 있을 때 금메달은 그의 것이 되지 않겠는가. 혼자 살다가 후반부 남은 삶의 반려자를 만나는 일도 신비한 사랑의 엮음임을 깨닫게 된다. 커다란 손의 간섭이라고나 할까, 계획이라고나 할까. 대부분의 남편들은 헌신이나 희생에는 서툰 게 우리들의 현주소이다. 나의 찬성을 얻어낸 가장 감동적 이야기는 이러하다. 부인이 암으로 투병할 때 이 예비실랑은 병간호를 도맡아 해냈다고 한다. 빨래며, 청소, 더 나아가 장보고 음식도 연구하여 건강식으로 식단을 짜 정성을 쏟았다고 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없어진 부인에게 투병의지를 심어주느라 본인도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말에 나는 눈물을 글썽 이였다. 집안일을 도맡아 한 그 불편과 수고 플러스, 그의 머리 삭발은 암 투병에 동참하는 마음(Empathy)이다. 그런 하트를 가진 사람이면 인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친구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사석에서 목사님의 축복을 이미 받았기에 발걸음을 내디디기가 한결 수월하게 되었다. 한참 늦었고, 한번 하기도 힘든 혼사를 반복해야하는 일이 어디 쉬운 결단인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힘도 들 것이다. 남의 눈을 더 의식했을 터이고 더 심사숙고했을 두 사람. 나이가 들 수 록 내 한 몸 편안해 지고 싶겠지만 한 방향을 바라보며 어깨 나란히 마음을 포개어 하루하루 건강하게, 찡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멀리 이민 와서 노인 아파트나 양로병원에 살면서 오지 않는 자식의 방문을 기다리는 외로움, 그들의 고독의 깊이를 자신 말고는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들의 생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소외된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신문 기사를 접할 때 마다 전문적인 <재혼상담소> 하나쯤 있어 지금 부터라도 짝짓기 운동을 펼쳐봄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일까. 중앙일보 1/30/2006 (월요일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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