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에 기대어 / 김영교

2011.08.07 06:13

김영교 조회 수:517 추천:107

넓은 유리창 너머 평화스럽게 펼쳐지는 바깥 세상에 시선을 주느라 읽던 책에서 눈을 뗐다. 헐렁한 시간에 기대어 실눈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자연스레 와 안기는 목가적 풍경에 오늘 하루가 엄청 배부르다 아주 오랜만에 타보는 편안한 좌석의, 통일호 기차가 가 닿은 바닷가 급행 케이티액스(KTX)가 놓치는 아기자기한 철로연변의 시골티 풍광 훤히 잇몸까지 들어난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천천히 오르는 흰 연기 한 가닥도 놓치지 않는 쉴 때 쉬고 멎을 때 멎는 완행의 맛, 더 알뜰하고 친절하다. 많은 물새들이 찾아드는 후진 항구, 느림의 미학을 통달한 듯 고층건물 없이 저렇게 잘 지킴이로 살아있음이 너무 자연스럽다. 두 번의 척추 수술 후 시골에 거처를 옮긴 친구 보러 가는 길 옛날 기억들 기찻길 따라 심심찮게 하나 둘 셋 넷- 자꾸 되살아난다. 더없이 느긋한 속도를 걸친 긴 꿈틀거림에 저항 없이 좌우로 흔들려 주며 한 흐름이 된다, 베개 밑까지... 언제나 기차여행은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해준다. 철로라는 괘도가 숙명처럼 덜미를 잡고 있어 안심이다. 고속열차의 속도는 나름대로 긴장감을 안겨주고 스릴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완행의 느림은 나를 가두지 않고 편안하게, 자유롭게 풀어줘서 좋다. 느긋하게 창밖을 내다보다 편해진 시선이 곤두섰던 긴장감을 누그러뜨린다. 완행기차라야 멎었다 가는 조그마한 어촌, 정거장 역사는 작지만 깨끗했다. 날씨도 제격이었다. 기차 뒤로 강줄기가 계속 따라오더니 끊기는 듯 이어 지고 강물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기차 길이 고개를 올라 산을 지나더니 터널을 통과한다. 차창 밖으로 나타나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의 그림같은 풍경이 연속상연이였다. 평화스럽게 펼처져 있는 정겨운 고국의 산하, 애국자가 된듯 심호흡을 해본다. 어느 듯 눈의 피곤은 가시고 포근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새삼 활기를 느끼기 시작하는 나의 세포들... 수면에 빠져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차 길 옆으로 올망졸망 들어선 시골 집 마당마다 빨래들이 나부낀다. 좁다란 골목길에 뛰노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과 6월의 싱그런 푸르름이 한데 어울려 물결치듯 나부낀다. 나무 잎파리들이 음악처럼 흔들리고 있는 철길 따라 오랜만의 게으름을 찍어 응시하며 느림도 축복이라고 가슴 깊이 느낀다. 뭉개져 지워질까 아끼느라 숨도 가늘어 졌다. 이윽고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한 기차와 작별을 했다. 비 온 후여서인지 시골 정거장은 깨끗했다. 사람들의 옷차림 모습이 싱싱하고 걸음걸이마저 안정감이 있어보였다. 그래도 길을 넓히느라 나무를 베고 굴을 뚫고 흙을 퍼 나르다보니 평화롭고 느긋한 시골 모습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게 보였다. 과연 나무를 베고 길을 넓히는 일만이 인간이 잘 사는 길일까? 자연손상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을 추구하며 산업화의 검은 연기가 대기를 오염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무공해 인심만이라도 오래오래 마을을 지켜 주기를 바랬다. 어디를 갔다 오는지 보퉁이 하나 둘 씩 머리에 이고 든 시골 아줌마, 아저씨들의 모습에서 생이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음이 엿보였다. 여유 있게 걷는 시골 사람의 걸음걸이와 완행열차의 느긋한 속도 속에서 삶의 여유를 사는 건강한 마을사람들, 그리고 서둘러 달리는 급행열차의 속도에 휘말려 놓치고 또 놓쳐버린 작고 낮은 것의 아름다움, 숨 가쁘게 사는 사람들의 한 박자 더딤을 생각해 보게 됐다. 여유 있는 느림의 미학, 헐렁함의 소통감, 완행속도의 느긋한 현장 체험이 나와 우리 모두의 일상으로 이어지는 웰빙 리소스이기를 간절히 소망해본 통일호 탐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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