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죽 반 숟가락 / 이대문집

2010.09.09 15:41

김영교 조회 수:877 추천:132

그 어느 해인가 서울 방문중 '금강 아산병원에 입원, 11회 동창회 시 낭송 순서 때문에 특별 잠간 허락된 외출, 다시 병원으로' 그때도 폐렴이었다. 호흡기가 약한지 면역성이 낮은지 자주 발병의 병력이 있다. 또 지난 겨울에도 폐렴으로 힘들었다. 그 때 멀리 사는 친구의 병문안을 받았다. 마음 쓴 흔적이 역력한 죽 바구니를 대동하고 말이다. 친구의 발걸음이 고마워 죽 꾸러미를 내려다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음식 투여가 어려웠던 투병의 병상에서 식은 죽 반 숟가락 겨우 먹기 시작하여 살아난 그 기억이 되살아 가슴이 짠해 졌기 때문이다. 너무 쉬운 일을 두고 사람들은 ‘식은 죽 먹기’라고들 한다. 그 쉬운 죽 먹기가 무척 힘들었던 투병의 나날들이 겹쳐 떠 올랐다. 평소에 국수나 밀가루 음식보다 촌스럽게 밥을 더 좋아한 밥보 인생, 병문안 온 친구의 죽배달 산울림이 시( 詩) 울림이 되어 메아리로 되돌아 왔다. 배달부 열이 높아 혼절한 오후 약기운 밖으로 간신히 실눈 뜨는 들숨날숨 앞치마를 두르고 찾아 온 송이, 전복, 야체 죽 자매들 입맛 옆에 조용히 엎드려 기다린다 옛날 언어를 흐트려 하늘에 못 닿은 탑하나 알고 있다 오늘 내려가는 신열만큼 낮아지는 자아 '여리고 성'을 외친다 허물어 진 자리에 생명기운 남은 나의 쾌청의 날 심장 하나의 기도죽 배달부는 나의 꿈. 나에게는 위(胃)에서 발원된 임파선 암 말기에 비장과 위장 절단수술을 받아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이른 새벽 두 숟갈 정도 두 가지 다른 죽을 손수 쑤어 보온병에 담고 식을 까바 여러 겹의 타월로 싸서 직접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져다주신 팔순 시어머니가 지금도 살아 계신다. 늘 내 손을 꼭 잡고 감사로 시작하여 간구로 끝맺으시는 기도의 어머님이시다. 그 때 보온병에 담겨진 것은 정성이었다. 죽으로 뭉개져 녹아든 어머님의 사랑이었다. 입이 열리지 않고 구멍마다 줄이 꽂혀있어 구강 음식투여가 어려운 상태라 못 먹겠다고 머리 젖는 나와 싱갱이 사이 죽은 식어 ‘식은 죽’이 되어갔다. 곡기가 제일이라며 반 숟갈만이라도 먹어야 산다며 애원하시던 어머니, 눈 뜨고 껌벅이는 것도 힘들어 고개를 저으며 겨우 처다 본 내 실눈에 비친 어머니의 얼굴, 어머니는 울고 계셨던 것이다. 내 마음 불편할까 숨기며 울고 계셨다. 그 순간이 떠올라 지금도 눈물이 난다. 어머님의 눈물을 보는 순간 팔순 노인의 수고가 감동으로 가슴을 저리게 했다. 남편 밥도 못해주고 갑자기 피를 토하며 병이나 여러 날 집비운 것도 송구한데 내가 뭔데 이 과분한 정성을 뿌리치랴 싶어 토할지라도 어머님을 안심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떠 넣어주시는 반 숟가락의 식은 죽을 힘들게 삼켰던 것이었다. 내가 먹은 것은 사랑이었고 눈물이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어머님을 통해 먹었고 단절된 세포가 활성화 명령에 감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식은 죽 반 숟가락’은 생명불꽃 점화였다. 젊은 나는 누워서 늙은 시어머니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는데... 문득 죄 없는 예수가 나의 죄 때문에 죽은 십자가 사건이 생생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이 아픔은 그의 찔림에 비하면 참을만한데 엄살처럼 느껴졌다. 부끄러운 감이 들었다. 눈 뜸이었다. 이 다음에 나도 며느리에게 베푸는 시어머니가 되어야지 하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어제 환자였던 나는 생명을 연장 받아 지금 이렇게 살아있고 그 간병해 주시던 어머니는 각막이식 거부증으로 힘들어하고 계시다. 시력을 상실함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줄을 놓지 않으시고 지금도 로마서 8장과 12장을 완전히 암송하신다. 박대균 사촌목사가 바로 도전받고 가는 대목이다. 어디 하나 감사하지 않을 게 하나도 없다시며 은혜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목격하는 나의 일상,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뒤돌아 보면 투병의 세월이 있었기에 이웃의 아픔에 더 민감하게 다가가게 되었다. 내가 앓은 암은 예수와의 인격적 만남의 문’이라는 고백을 이 순간도 서슴치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 암은 위기일 수 도 있다. 두려움일 수 도 있다. 나에게는 열림이었고 많은 만남으로 가는 기회였다. 그중 가장 귀한 생명을 만나는 만남을 선물로 받았다. ‘식은 죽 반 숟가락’은 하나님 성품에 참여하는 '자아버림' 이었다. 밥만 고집하던 나의 식탁은 식은 죽이던 더운 죽이던 죽(粥)은 살아있는 죽으로 이 아침도 나를 에너지 속으로 불러드린다. <맛,멋, 그리고 향기> 이대문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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