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인 데니 / 김영교
2010.02.26 03:13
어머님 노인 아파트에 새로 온 메니져
친절하고 부지런하다
청결한 주위
입주자들이 다 좋아한다
손바닥 크기의 우리집 뒷 뜨락
과목도 있고 선인장 화분들과 군자란
천사의 나팔, 상사화의 꽃밭도 있다
내가 들어서면
데니를 좋아하는 어머니처럼
밤새 더 풋풋해진 초록 얼굴 다투며 내민다
떡잎도 떼고 때에 맞게 물도 거름도 뿌리면
자격있는 정원 관리인으로 여기고
늘 싱싱한 기쁨을 건네준다
문득 어디선가 '메니저님' 하고 부른다
첫째 건강 관리는 제대로 하고있는지 물어온다
절제와 운동, 섭생과 믿음의 호흡을 잘 조절하는지를
둘째 시간 관리면은 어떤가
<오늘>,<지금>이 나의 때, <여기>가 나의 장소, 최선을 다하고 마음껏 누리라고 일러준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 앞에
숨쉬고 행하는 모든 것이 내 삶의 내용, 의미
한 순간도 낭비할 수 없다는 절박한 생각이 나를 휩싼다
셋째 재산 관리면은 어떤가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를 다그친다
베품과 나눔의 기쁨을 키워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초록에 둘려쌓여 묵상할 수 있었던
이른 아침 경건의 시간
투자없는 좋은 결실이 있을 수 없고
수고없이 좋은 관리인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
화초들이 스승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86,400 원을 입금해주는 은행이 있다.
그 날이 지나면 쓰든 안쓰든 잔액이 다 빠져나간다.
어제로 되돌릴 수도 없고 내 일로 이월 할 수도 없다.
오로지 오늘 현재의 잔액으로만 살아야 한다.
수수께기 같은 이 잔액의 비밀은 바로 하루 24시간
즉 86,400초의 시간이다.
신이 지상의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이 선물 앞에서
누구도 가진 게 없다고 불평할 수 없다.
매일 자기앞으로 입금되는 86,400초에 감사하며
멋진 하루를 창조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진홍 시인의 글에서 읽었다.
빈도수가 잦아진 사계절의 순환방문
마디마디 통증없는 손
부지런히 움직이며 화초들을 어루만진다
처다보는 초록 시선들
그 위로
공평하게 쏟아지는 창세 전 그 햇살
나의 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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