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생각하며

2010.09.11 07:53

김영교 조회 수:611 추천:152

우리 동네는 토론토 거리처럼 많은 메이플 나무들이 행군하듯 정연하게 서있다. 무성한 잎사귀와 가지 사이사이 그늘과 하늘을 보여주는 후한 경관이 참으로 아름답다. 여름을 보내면서 곱게 물들기 시작한 양지쪽 메이플 가로수는 오늘도 나를 산책으로 불러낸다. 나는 걸으며 생각한다. 가로수가 있는 나의 산책길은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시야에 잡히는 아름다움, 마음을 채우는 아름다움,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다가와 내 꿈을 풍요롭게 해주는 이 산책길은 느낌 공장이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바람, 내 피부에 에누리 없이 와 닿는 공기의 감촉, 사계절 변화를 통해 선명하게 생명의 귀함을 느낀다. 분주한 일상으로 둔화된 나를 살갗에 꽂혀있는 수많은 안테나를 동원하여 계절의 변화를 체감토록 해준다. 습관화된 숨 가쁜 내 행보의 태압을 풀어 늦추어 주면서 내 삶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산책길은 뉘우침을 전제로 지적당하는 현장이 되기도 한다. 산책길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길을 거론하는 속담에 ‘길이 아니거든 가지마라’는 정도(正道)에 벗어나는 일은 처음부터 하지말라고 하는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구도자의 길, 제자의 길, 스승의 길, 인간의 길등 과정이나 도리나 임무 또는 수단이나 방법 등을 의미하기에 더욱 어렵다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선배내외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인간이 급작스럽게 더러는 준비하는 도중에 마지막 길을 가지 않는가. 미련 없이 뛰어내리는 사람낙엽은 될수 없을까. 세상의 길들은 참으로 다양하고 참으로 많다. 이멜 왕래에 덮치는 정보의 쓰나미 동영상의 길도 있고, 큰길, 샛길, 골목길 등 보이는 길은 쉽게 파악되지만 보이지 않는 길은 모르기 때문에 상상의 지도를 펼치며 신비스럽게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한다. 마음과 마음, 사람과 우주공간 그리고 모든 만물끼리 연결해주는 길, 어찌 깊이나 넓이를 가늠할 수가 있으랴만 그저 놀라웁고 경이로울 때가 참으로 많은 요즈음 사이버 세상이다. 인간의 흔적이 있는 곳에는 늘 길이 나 있다. 사람은 길을 만들며 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길이 없는 동네는 어느 세상에도 없지 않는가. 길을 따라 가다가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수많은 생명이 태어났다 죽었다 노상(路上)에서 일어나는 질서가 아닌가. 산에도 들에도 어느 곳에나 길이 나 있다. 길은 생명이기에 우물가에는 사방으로 난 길이 있고 인간의 두 다리는 길을 전제로 하고 이동하는 도구로 쓰여 왔던 것이다. 길을 닦지 않았더라도 길이라고 여기면 길이 된다. 편리를 위해 이정표를 부치면 밟게 되는 땅뙈기가 실질적인 길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길이란 행복을 찾아 떠남이며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소의식의 환향(還鄕)이었기에 살아있음이요, 왕래를 의미한다. 보다 나은 삶으로 발전되는 거래의 기동력이 되기도 하여 우주에 길을 낸 인공위성, 길이 없는데 있는 길을 날아가는 철새와 팔방으로 헤엄치는 바닷물고기, 교통순경 없어도 잘 움직이고 있다. 우주의 길, 바로 질서라는 섭리를 따라 생멸의 리듬은 선과 악, 밤과 낮의 두 얼굴로 길을 가고 있다. 바로 자연의 호흡인 것이다. 길은 바로 인류사의 발자취이며 역사의 흐름이 아닌가. 일찍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외친 한 목수는 길 하나를 갈파하였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 나머지 당신과 나를 세상에 두었고 세상에 있는 바로 당신과 나를 위하여 죽었고 그가 쏟아 내린 보혈이 영생에 직결 되어있는 그리고 부활의 십자가 길, 그 유일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였다. 물드는 가을을 끼고 가로수가 있는 길을 걷는 1시간 동안의 가슴 트이는 즐거움을 나는 소중히 여긴다. 오늘도 나의 시선을 몽땅 가지고 가는 저 가로수 가족들, 걸을 수 있는 성한 두 다리가 고맙고 못 걷는 바쁜 일과일찌라도 잠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기는 나의 두 눈을 감사하며 행복해지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 쯤 옆집 엘(Al)이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던 집 차고 앞길을 쓸어주며 봄이 오면 가로수는 새잎을 내놓겠지만 새봄이 와도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상념에 젖어든다. 가을 하늘은 은총처럼 내려와 투명한 빛으로 관조의 창문을 깨끗이 닦아준다. 깨닫는다. 내가 무엇이기에, 무슨 선행을 했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내 삶에 허락 해 주는가 말이다. 눈뜨는 기쁨이 감동으로 나를 전율케 하는 짠한 주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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