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친구의 그날의 전화 / 김영교

2017.01.14 20:01

김영교 조회 수:110

친구의 그 날의 전화 / 김영교

 

그날은 토요일 바쁜 주말이었다. 아주 오래 만에 상호 엄마가 전화를 했다. 평소에 목소리 가늘고 천천히 말하는 상호엄마가 마구 울먹여댔다. 쟈니 엄마, 미안해, 미안해 울음 섞인 ‘미안해’ 란 말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50대 상호 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큰 아들 상호, 상재는 우리집 애들보다 한살씩 손아래였다. 애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는 같은 교회를 섬기며 가족같이 지내왔다. 상호 아버지의 떠남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집안의 슬프고 궂은 일로 우리는 더욱 가까워 졌다. 


더운 여름철만 대면 지금도 상호네 수영장이 생각나곤 한다. 큰 수영장을 가진 상호 엄마는 마음도 컸다. 상호엄마는 자기 집에 방학 때마다 우리 두 녀석을 불러줬고 그 댁 뒤뜰에서 캠핑도 하며 여름을 신나게 보내게 했다. UC계열 대학을 마친 후 상호는 북가주에, 동생 상제는 뉴욕 월가에 직장이 있다고 들었다. 나는 두 차례 투병하느라 병원출입이 잦아 많은 왕래를 끊었다. 

 

짧지 않은 상호엄마의 힘들었던 세월이 내 기억속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묘지 방문 상호 아부지를 만나 꽃을 헌화해 왔다. 주위에서 말려도 꿋꿋하게 헌신했다. 정성이었고 사랑이었다. 그 해 그 10년을 채우고 그 주말 우리를 초청한 그 예배를 마지막으로 상호아버지께 그만두는 헌화의 내용을 아뢰었다. 묘소에서 마지막 참배 예배를 드리는 이벤트는 그래서 의미 깊었고 그 10년 세월이 고스란히 상호 아버지께 부어졌다. 생전에  금슬도 좋고 믿음도 좋은 부부였다고 예배집례를 맡은 그 때 문일명 목사의 설교 전언이 있었다. 새벽 꽃시장을 가서 싱싱한 꽃으로 한 매주 묘지 방문, 그 행사를 접겠다고 울면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던 상호 엄마 모습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게 10월 어느 주말 그때 묘지공원은 가을 색이었다. 상호 아버지 묘소에서 마지막 고별 추모예배를 올릴 때 나도 마음을 모아 상호 아버지 보고픈 마음을 누르며 그리움에 젖어들었다. 건너 오갈수 없는 한없이 깊고 큰 슬픈 이별의 강이 죽음이구나 절실하게 느꼈다.


그날을 끝으로 상호엄마는 스스로 자신을 놓아주었다. 서서히 상호엄마 눈물이 말라가고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상호엄마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미국서는 회계학 석사학위 소지자이다. 그런데 전공을 바꾸어 화장품 비지네스를 시작, 아주 성공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앞서가는 사업가가 되었다. 흘러가는 세월이, 또 사람에게 부대끼며 상호엄마는 단단해져갔다. 남편 묘지 앞에서 꽃에 파묻혀 울던 옛날의 여린 모습은 아니었다. 자기 삶을 계획하고 꿋꿋하게 잘 지탱유지해가는 사업가 모습으로 자신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온 그런 상호엄마가 처음부터 미안하다면서 울어대는 통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또 흐느껴 울어댔다. 나는 그동안 주위에 알리지 않은 채 투병생활을 해 왔다. 사연인즉 늦게 알아서 미안했고 또 알아도 사업에 열중하느라 또 잘 이겨내겠지 무관심에, 또 바쁘기도 해 자기가 본의 아니게 냉정했다고 울고 또 울었다. 알고 보니 본인이 그동안 유방암 절개수술 후 항암치료 키모와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회복이 늦고 통증이 있고 빠진 머리에 가발이 앉고 많이 여위었다고 했다. 내가 암과 싸우며 수술 받고 머리카락 다 빠져 외출도 제한된 그 투병기간을 지금 자기가 겪고 있다고 했다. 무척 외롭고 괴롭고 힘 든다고 했다. 사람은 남의 신발을 신어봐야, 또 걸어 가봐야 남의 사정을 알게 되는가 보다. 이제 그 고통을 깨닫고 자신의 냉담을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노라  울면서, 울면서 사과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암을 앓고 보니 모른채했던 자신이 죄스러워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노라 고백했다. 그때 알았더라면 그리고 왜 얘기 하지 않았느냐며 따끈한 국 한 그릇 먹여주지 못한 게 영 마음에 걸린다며 그 긴 세월의 냉담을 정말 미안타 했다. 진심어린 어조였다. 


내가 투병하고 있을 그 때만 해도 머리카락도 다 빠지고 토하고 체중이 형편없이 줄어 잘 걷지도 못했다. 오래 못살 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 자신이 아파보고서야 철저하게 혼자라는 고독과 고통도 자기 혼자만이 감수를, 상호엄마가 비참했던 기간에 나의 투병이 오버랩 되어 기억났던 것이었다. 상호엄마의 그날의 전화목소리가 우리 서로를 살려냈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 후 뜻을 같이 해 시각장애자를 위한 실로암 비젼 공동체를 적극 후원하며 우리는 켄서 서바이버로서 주위 환우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필요할 때면 달려가 기꺼이 봉사에 임하고 있다.

 

보호자가 된 첫아들 상호는 엄마의 와병을 위해 주말마다 북가주에서 내려와 병상을 지켜준 효자였다. 힘들어 했던 우리의 투병세월은 아득한 옛날 회고록처럼 추억담 얘기가 되었다. 화장품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지금은 경쟁도 많지만 착실한 기업정신으로 메니저를 두고 고객관리를 잘해 사업은 잘 유지되고 있어 참 기쁘다.

 

남편이 가고 엄마를 지키던 효자 상호가 늦장가를 가던 날 온가족이 반가운 해후를 누렸다. 엄마가 남편에게 그토록 헌신했고, 아들은 그 엄마에게서 받은 사랑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보기에도 좋다. 이제는 뉴욕의 동생 상재만 남았다. 아우 상제의 결혼상대를 물색할 참이다. 이렇게 살다가 짝 짓고 애 낳고 성공하고 울고 병들고 낫고 외롭고 견디고 그리고 나이 들어  그다음 생에 건너가고 있다. 세월이란 실타래에 붙어서....


경험해보지 않고 그때 투병의 진상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이해를 머리로 할뿐 가슴으로는 아니었다. 울먹일 만큼 절실하지 않다. 사람은 미련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자기가 당해봐야 그 입장을 절절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이 세상에 질병이 있는 이유도 또 인생이 일회 편도 여행인 것도 생명이 귀하고 시간이 귀함을 미련한 인간으로 알게 하기 위함 아닐까. 건강할 때 누리고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하기위한 섭리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안으로 모아보는 주말 오후이다. 문득 상호엄마 생각이 난다. 전화를 걸어볼 참이다. 1-15-2017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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