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 김영교

 

  지난 토요일은 친구 남편 장례식이 있는날이었다. 연락 확인 없이 우라 팀 들이 다 모였다.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 건재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12가 다 참석했다. 그 만큼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은 대단하고 카리스마있는 목회자라 놀라움이 무척 컸다. 디지탈이 나오면서 코닥이 망한 뉴스는 우리 가슴에 아픈 바람이었다. 이를 계기로  급격한 변화의 회오리 바람이 불어댔다. 그는 우리 멤버였다.

         

사진을 위하여 지구를 돌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여자들 틈에 끼여 한 때 사진을 배우는 팀에 속했는데 그의 테크닉은 이미 정상에 도달해 있었다. 빛으로 그리는 사진을 찍기위해 카메라를 정비하고 필림을 로딩, 슈팅은 확신에 차 있는 프로같았다. 그 남자를 내가 눈여겨 본 데에는 자신의 이러한 과거 경력과 기술에 자만하지 않고 계속 정보를 캐고 아름다운 세상을 담아내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쏟고 있는 그의 겸손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돌핀* 사진반에는 목사와 사모 그리고 그 남자, 나머지 7명은 모두 주부들이었다. 사람 관계가 좋은 그 남자는 분위기 잡는데 절묘한 언어솜씨가 있어 초보자 우리는 그의 말에 귀 기우리기를 좋아해 그를 리더로 뽑았다. 자원이 달아 없어지는 법이 없는 그 남자의 해박한 지식과 보충 실기실습은 우리들의 황금어장이었다.

오랜 세월 방치해두었던 자신을 찾아 자기개발의 시간을 가진 습작 기간이 있었다. 카메라를 메고 고정관념 건너의 들판을 헤맸고 낮게 엎드려 처다 보는 세상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한없이 낮은 무릎을 요구하는 들꽃들의 키와 흙 알갱이 높이에 눈 맞추느라 힘도 들었고 지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더 이상 어떻게 낮아져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며 항의도 했고 인내심도 바닥을 내보였다. 그럴 때 마다 그 남자는 관심의 못으로 다가와 부드럽게 풀었다 다시 조이며 이해의 망치질을 해댔다. 집중하도록 우리를 긴장시켜주기도 했다. 우리는 배신이 없는 자연과 동화 될 때 행복했고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 행복이 오래오래 지속되도록 우리는 특별 안내 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색깔은 말 이전의 소통의 언어였다. 하늘을 비춰내는 물 빛이 먼저 우리 심상에 새겨지기를 바랬고 굳이 자기 색을 주장하지 않고도 다채로웠다. 우리를 위해 하늘 가득 풀어놓은 색깔은 살아있음이었고 따뜻함이었다. 카메라에 담아내는 데 벅찬 기쁨이 따라오도록 그 일에 그는 앞장서있었다. 우리 모두는 마무리 작업으로 '보이지 않는 섭리의 손'을 들어내는 도구로 몰입하였다.

다발성 골수암으로 투병하는 남편을 보살피는 사진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볼디(Mt. Boldy) 산 산(生)바람을 쏘여 주던 날 그 남자는 우리 일행에게 김춘수의 '꽃'이란 시 한편씩을 선물로 내 밀었고 그때 우리 모두의 가슴은 떨렸다. 그의 멋을 훔쳐보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올 때 쯤 우리 모두는 나긋한 감성으로 그 남자의 시적 취향에 푹 빠져들었고 그 남자는 다 외우기를 우리에게 숙제로 남겼다. 덤으로 그가 즐겨 듣는 강준민 목사의 <경청의 철학> 설교 테이프도 잊지 않고 하나씩 안겨주었다. 그는 개신교 신자는 아니었다.

영상선교사 사진반 사부가 서울 출타, 자리를 비웠을 때다. 스승같은 그 남자는 같은 물체를 보지만 다른 표현을 요구했다. 빛이 그리도록 허락하는 것이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득한 화면을 계속 비우면서, 지나치기 쉽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진작가였다. 마음의 눈으로 그리는 사진작가의 세계로 그 남자는 우리를 몰아가고 있었다. 피사체를 눈으로 찍는 사진사보다 구도 안에 의미를 찍는 사진작가로 성장하도록 부추겨 주었다. 입으로 말하는 사진사 대신 사진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마음을 허다하게 감동시킨다. 그리고 엄청 힘 솟게 하는 사진작가의 길을 심어주었다.

렌즈만 들이대면 아름다움을 위한 그 남자의 끼가 살아나 번득이기 시작 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작가의 혼이 뷰파인더와 셔터에 스파크로 튀고 손만 갖다 대도 감응 되어 자연은 줄서서 축소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신명이 살아나는 것, 그것은 그 남자의 영혼의 눈이었다. 어느 날 그 시선 안에 숨어 있던 ‘꽃’이 돌핀 팀 토양으로 옮겨져 나타나리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 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는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우리 모두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그 유명한 ‘꽃’이란 시 전문이다. 기계의 눈금처럼 정확하고 냉정한 그 남자, 눈을 지그시 감고 낭송하는 그 남자의 입에 오른 이 운 좋은 ‘꽃’은 이제 시들어 죽을 염려는 전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밥주걱만 쥘 줄 알았던 주부들 가슴에, 황무지 이민 들판에 까지 퍼져 그 때 그 남자의 꽃은 이렇게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린 그 꽃은 행복한 꽃임에 틀림없다. 친구의 목회자 남편의 소천은 가슴아린 현실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임재한 영역임을 깨닫은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과 사, 모두 보이지 않는 손의 영역아닌가!

안식을 비오며 유가족과 친지에게 위로가 있기를 .... 

 1-22-2-17

profile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30 쪽지글 - 비범한 괴짜, 김점선의 그림과 친구들 / 김영교 [6] kimyoungkyo 2017.02.26 227
529 신작시 - 안으로 나를 밀어 넣고 - 김영교 [10] kimyoungkyo 2017.02.24 165
528 퇴고 수필 - 꽃구경 / 김영교 2-20-2017 [6] kimyoungkyo 2017.02.20 282
527 퇴고시 - 꿈꾸는 빈 통 / 김영교 2-2-2017 [4] kimyoungkyo 2017.02.20 406
526 퇴고 시 - 오늘도 나는 기차를 그린다 / 김영교 [4] kimyoungkyo 2017.02.20 118
525 퇴고수필 - 줄 두 개 뿐인데 / 김영교 [6] kimyoungkyo 2017.02.16 224
524 퇴고수필 - 웃음이 이긴다 / 김영교 [11] kimyoungkyo 2017.02.13 209
523 퇴고수필 - 짦음의 미학 / 김영교 [12] kimyoungkyo 2017.02.11 635
522 시 - 틈 외 신작수필 - 화요일은 그녀와 함께 - 김영교 [13] 김영교 2017.02.05 387
521 퇴고수필 - 과외공부 / 김영교 [2] 김영교 2017.02.05 137
520 신작수필 - 학처럼 날아서 / 김영교 [2] kimyoungkyo 2017.02.04 291
519 신작시 - 작은 가슴이고 싶다 / 김영교 [3] kimyoungkyo 2017.02.04 219
518 신작수필 - 가족 / 김영교 [9] 김영교 2017.02.02 247
517 퇴고수필 - 또 하나의 작은 소요(小搖) [4] 김영교 2017.01.30 142
516 신작시 - 양말, 맨 아래에서 / 김영교 [5] 김영교 2017.01.29 157
515 신작시 - 리돈도 비치에서 - 김영교 [4] 김영교 2017.01.29 227
514 신작시 - 바탕화면 / 김영교 [2] 김영교 2017.01.27 91
» 퇴고수필 - 보이지 않는 손 - 김영교 김영교 2017.01.25 64
512 퇴고 시 - 부부 밥솥 / 김영교 [3] 김영교 2017.01.25 59
511 퇴고수필 - 파격의 멋 / 김영교 [4] 김영교 2017.01.21 381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15
전체:
647,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