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는 게 대포 뿐 일까 / 김영교

2011.07.28 09:55

김영교 조회 수:654 추천:154

쏘는 게 대포 뿐 일까 그 해에는 서울을 세 번 다녀왔다. 장조카 결혼식, 큰 오라버니 와병소식, 그리고 문학상 때문이었다. 시력을 잃은 9순의 시어머니 때문에 집을 비운다는 게 조심스러웠다. 이를 눈치 챈 어머님이 오히려 등 떠밀어 주며 모교가 주는 상이라는 소식에 어머님 자신이 더 기뻐하셨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상도 받고 상금도 탔으니 한 턱<쏘라>는 인사에 네네 대답했고 다 응하려니 남은 체류시간이 짧아 안타까웠다. <낸다> <대접한다> 대치어로 <쏜다>가 유행어로 뜨자 이런 재미있는 조크가 등장했다. 김정일이 남한에 못 오는 이유; 첫째 타는 택시마다 총알택시, 둘째 골목마다 대포 집, 그것도 왕대포집, 셋째 국수집마다 칼 국수집, 넷째 집집마다 핵가족, 다섯째 너나 할 것 없이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 <쏜다>고 하니 무서워서 못 온다는 얘기다. 고국을 떠난 지 오래된 나는 <낸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주로 식대지출을 책임진다는 <쏜다>를 처음 접했을 때 퍽 생소했다. 손바닥을 폈다 접었다 하는 사이에 최첨단의 정보가 속출하는 인터넷 시대에 맞는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세상이기는 하다. 낯설음은 속도에 걸맞게 반복되어 언젠가는 친근한 통용어가 되기에 말이다. 문학상이란 과분한 상이 주어져 마치 겨우 일어서는 아기에게 '걸을 수 있어' 하고 좋은 신발을 신기운 그런 감회였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음 밭을 허락받은 것을 감사 하면서 한턱 쏠 때마다 그 사귐이 더 없이 정겹고 즐거웠다. 마음의 척박한 묵은 땅을 기경해야지 하는 도전이 따라 붙는 참으로 기쁜 마음이었다. 모교역사에 남는 상패와 상금, 일신상의 기쁨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도 가문의 자랑으로 여겼다. 이렇게 신이 나 있는 나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소식은 가까운 친구 희의 대장암 진단이었다. 유착된 대장을 많이 잘라내고 전이된 부분도 제거했다. 손발톱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극심한 키모 휴유증을 견뎌내기 힘들어 아예 마음을 걸어 잠궜다. 나이도 그만하면 살만큼 살았다며 단식투쟁처럼 키모 사절에 돌입한 바로 그때에 나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놀란 주위의 사랑하는 마음들은 무척 염려했고 지켜보는 시선들은 안타까워 안절부절, 답답해하고 있었다. 나는 밤새 설득력 있게 이멜을 썼다. 깨끗하게 여과된 마음을 담았다. 답장이 오갔지만 친구는 체념한지 오래 된 듯 투병의 의지가 없는 게 곧 출국해야 하는 내 속을 태웠다. 나는 나의 투병경험을 앞세워 친구를 설득하는데 밤을 세웠다. 마음을 모아 전능자에게 기도했다. 그 다음날 방문을 허락받은 나는 친구를 찾아가 손잡고 울면서 마음 돌려 키모 받기를 권유했다. 환자 스스로도 노력해야하는 필연성, 가족과 함께하는 팀스피릿의 투병, 힘내자고 애원하게 이르렀다. 나의 마음 깊은 곳, 뜨거운 움직임이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상금을 약값으로, 나의 참여를 내놓게 도와주었다. 펄펄 손 내 젓는 친구에게, 완고하게 거절하는 친구에게, 줄다리기는 힘겨웠다. 아주 한참, 서로 지쳐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울면서 간곡히 부탁하는 나의 진심이 바늘구멍이 되어 친구는 키모를 다시 받겠다는 가느다란 약속을 하게 이르렀다. 분명 하늘의 도움이었다. 보이지 않는 큰 힘이 작동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내가 떠나 온 후 남아있는 사이클을 잘 넘기고 있다는 남편의 말, ‘두드려라 열리리라’ 친구는 나의 눈물 속에 녹아있는 우정의 두드림에 감응한 것이었다. 눈물 쟁반에 올려 진 보이지 않는 우정의 원액이 타올라 굳어있던 고집을 녹였다. 구데타를 일으킨 세포를 껴안은 우정의 두 팔은 거대한 대포 같았다고나 할까? 암 퇴치 과녁을 향해 쏜 기도의 화살은 친구의 심장을 울리는데 적중하였다. 감사와 사랑에 벌벌 떠는 암세포들을 향해 눈물의 대포를 쏘도록 발사포병 보조사가 나도 모르게 되어있었던 것이다. 누구의 힘이었을까? 창공 어디쯤에선가 ‘발사!’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대기출동의 구호! 지금도 상 받은 턱 내라는 인사를 들을 때면 '쏠께요.'가 친구의 얼굴과 겹치면서 아름답게 가슴가득 찡한 떨림으로 다가온다. 그 해 가을 쏘아올린 세상에서 제일 큰 대포, 세상에서 제일 큰 화살, 투병의 험준한 산을 넘고 마을로 내려오는 힘겨운 여정에 기도의 후원자가 된 것, 나에게 있어 예상치 못한 은혜의 체험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친구 부부는 이곳을 방문할 계획을 세울 정도로 많이 쾌차되었다고 한다. 무척 기쁘고 가슴 설랜다.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보이지 않는 힘과 계획이 우리의 생을 신비와 경이 속으로 몰아고 가고 있는 기적을 체험한 셈이다. 창밖 햇빛이 유난히 찬란한 아침이다. 커다란 손이 거머쥔 활줄에 당겨져 쏴져 날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사람 화살, 생명 과녁을 향해 지금도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 2011/7/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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