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 행복할 수 있다니 - 산장일기 1 / 김영교

2011.11.26 14:08

김영교 조회 수:566 추천:105

행복할 수 있다니 / 김영교 
계절의 끝자락, 그 날은 
빅베어 산장은 첫눈 이불에 푹 싸여 시리게 아늑했다 

이맘 때 쯤 된장찌개처럼 산 아래 동네는 늘 맛있게 부글댄다 
벗어나 단숨에 올라온 다그침
가슴이 마구 뛴다

뜨거운 불이 맛 살리기에 온 힘을 쏟는 저녁 식탁
잰 손길 수고는
빛나는 부추부침과 떡 만둣국 올린다
정에 취하고 포도주에 취해버린 산장의 밤은 말없이 깊어

그리움을 잠재우지 못한 새벽
거실을 서성이는 미셀과 목이 긴 여자 
눈을 털듯 기지개 펴는 흰 산을 빨아 마신다
 
킬리만재로의 기다림의 산정을 바라만 보다가
냉담을 태우는 난로, 그 앞에 찬양 목소리 달아오른다
통나무 벽을 돌아 흘러 화음 잘 익어라, 태엽을 감아놓는다 

다음에 올 발걸음을 위해 옹이에 놀란 하얀 딸꾹질을 벤다
고드름에 매 단다 
눈에 보이는 것 하늘 아래 모두 하얗다 
바늘 솔잎의 저 푸른 잣나무만 빼고 
귀 있는자여, 들어 보라 

떡송이처럼 흰 눈 앞에,  시커먼 내 심뽀, 
내 욕심의 씨줄날줄 
오늘 같은 날 넝마처럼 버리고 떠나리라 
오르지도 못한 채 멍하니 바라만 보아도 충분히 가득 차오르는 까닭은 왜일까 

창밖 저 눈 먼 산을 바라만 봐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빅베어 일기 1 (옥천의 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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